개항장 인천의 외국인 상사들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23 12:59:09
개항장 인천의 외국인 상사들
손장원(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 고전 양품점(바로 옆에 있는 일본식 건물과 모더니즘계열의 건물도 현존하고 있으며, 멀리 금파건물이 보인다.)
개항장 인천에는 앞서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있던 서양과 미국계 상사와 중국인, 일본인들이 속속 입국해 사업을 펼쳤다. 개항 초기에는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진출한 상사들이 사업 규모나 내용에 있어 압도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회사 중 비교적 규모를 갖춘 것은 은행, 운송회사, 정미소 등이었으며,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여관이나 소규모 상점을 운영했다. 또한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회사나 상점도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대규모 사업을 운영했으나,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운영하던 업체는 중소규모에 불과했다. 유럽계 상사로는 이화양행, 세창양행, 홈링거양행 등이 있었고, 미국계상사로는 타운센드상회가 대표적인 회사였다. 한편, 우리나라 상인들도 순신(順信)상회, 대동(大同)상회, 대평상회 등 여러 개의 상회를 운영했다. 순신상회는 순신창이라고도 했으며, 1885년 타운센드에게 인수됐다. 순신창을 인수한 타운센드는 서상집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미곡무역에 종사했다.
# 이화양행
이화양행(Jardine Matheson & Co.)은 1832년 스코츠 윌리엄 자딘(Scots William Jardine)과 제임스 매디슨(James Matheson)이 중국 광저우에 설립한 상사로 중국에서는 이화양행(怡和洋行)과 사전양행(渣甸洋行)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는 1883년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로 우피무역에 종사했으며, 당시 이화양행은 폐선을 인천항 중국인 거류지 앞 바다에 띄워놓고 이를 사무실 겸 창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상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상사다. 1884년에는 묄렌도르프의 주선으로 조선정부와 협약을 맺고 상하이에서 나가사키(長崎), 부산을 경유해 인천에 이르는 정기항로를 개설하고 화물운송을 담당했다. 이후 이화양행은 미첼을 시켜 금화, 금성 등을 답사하는 등 조선의 광산채굴에 힘을 기울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884년 12월말 인천에서 철수했다.

▲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홈링거양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두고 중국과 우리나라에 지점을 설치했던 회사로 인천지점의 최초 위치는 중구 해안동 1가 7-9번지 부근으로 보인다. 사옥은 1898년 8월에 완공된 것으로 사바찐이 설계했다. 대지면적 2천237㎡, 연면적 553㎡인 벽돌조 2층 건축물로 1층은 반복아치로, 2층은 페디먼트로 장식했다. 페디먼트는 사바찐이 설계한 러시아 서울영사관 전망탑, 러시아 인천영사관 정면, 제물포 구락부 등에서도 사용된 장식이다. 지붕은 우진각지붕이고 1층 전면부 외랑은 균일한 7개 아치로 장식했다. 2층에서는 1층의 외랑상부를 발코니와 지붕에서 돌출시킨 페디먼트 난간을 설치했다.
# 세창양행(世昌洋行)

▲ 세창양행 사옥
마이어양행 인천지점(현재의 중국 중앙동 3가 4번지)은 1884년에 개설한 것이다. 1907년에 칼 발터(Carl Walter)가 이를 인수해 칼 발터양행(Carl Walter & Co.)으로 개칭했다가 다시 세창양행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세창양행 건물은 1884년에 세워진 단층 벽돌 건물로 지붕은 일본식 기와로 마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 광창양행(廣昌洋行)/베넷상사
영국인 베네트(W. G. Bennett)가 1902년 일본인과 합자해 일영무역상회를 설립했다. 몇 년 뒤 일본인의 회사가 망하고, 광창양행(베네트상회)으로 개칭되면서 베네트가 독자적으로 경영하게 됐다. 이 회사가 있었던 위치는 해안동 4가 1번지(현, 신포공영주차장)이며, 현 인천중동우체국과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모임지붕 2층 건물로 2층 창문에는 오르내리창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 이운사(利運社)
1892년 전운국(轉運局)에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해운회사로 주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운반했으며 민간화물도 운송했다. 이 회사가 보유했던 선박은 독일에서 들여온 1천t급 이운호와 전운국에서 인수한 현익호(顯益號), 창룡호(蒼龍號)가 있었다. 이운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사옥의 규모 등 자세한 것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기록을 근거로 추정한 위치는 중구 경동 225번지이며, 이 자리는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건립초기의 모습)
#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은 해안동 1가 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면적은 396.7㎡(120평), 연면적은 393.4㎡(119평)이다. 당시의 업무용 건축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며, 건축재료를 일본에서 반입해 세웠다고 한다. 정면을 좌우대칭으로 처리하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설치한 주출입구 상부를 페디먼트로 처리한 서양식 건축물이다. 현재 정면 출입구에 있는 기둥과 슬라브는 나중에 설치한 것이다. 세로방향의 창문을 두어 수직성을 강조했고, 정면부 지붕에는 패러핏을 설치해 앞에서 보면 평 슬라브 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는 모임지붕의 건물이다.
이 일대의 건축물이 주로 은행이나 관공서 등이었던 데 비해 격식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회사의 업무용 건물이라는 데 의미가 있으며, 근대기 사무소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다.
# 일선(日鮮)빌딩/닛센빌딩(1932년)

▲ 낫센빌딩(현재)
철근콘크리트조 4층의 일선빌딩은 1층은 거친돌로 마감하고 2층 이상의 상부층은 비교적 가볍게 마감해 조화를 고려했다. 즉, 1층의 장식적 요소와 2, 3, 4층의 모더니즘적 요소가 결합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스트링 코스(String course)를 둘러 층을 구분하고 건물 뒷부분을 뒤로 물려(set back) 2층을 올렸다. 2, 3층은 같은 외관으로 처리하고 4층은 사각 모서리부분을 절개해 +자형 평면을 갖도록 했다. 또한 지하층의 채광을 위해 드라이 에리어를 설치하고 지하층 창문을 달았다. 현재 이 건물의 1층은 신축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2, 3, 4층 외벽마감으로 사용된 타일만은 정확하지 않다. 주출입구 가장자리에 설치된 몰딩장식이 특이한데 이는 일본 고베에 있는 스미토모빌딩(神戶 住友ビル)의 입구와 처리방식이 비슷하다. 장식주의적 요소와 모더니즘적 요소가 결합된 1930년대 초기 사무소 건축물이다. 인천에 세워졌던 근대건축물 중 4층 규모의 건물은 거의 없었으며,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다. 또한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민간이 세운 4층 규모의 업무용 건축물은 국내에서도 흔하지 않다.
# 군회조점(郡廻漕店)

▲ 군회조점
회조점은 해운회사를 일컫는 일본식 표기이며, 코오리(郡金)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상호다. 사옥은 해안동 1가 2-2번지에 위치한 2층 조적조 건물로 1904년 세워진 건물이다. 1층에는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에 창문을 하나씩 배치했으며, 2층에는 3개의 창문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의 입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창문을 단순하게 처리한 데 비해 2층 창문은 장식적 요소가 돋보인다. 하인방은 흰색으로 칠한 콘크리트로 처리했고 창문 좌우에는 벽돌을 내쌓아 기둥처럼 보이도록 했다. 사진 좌측에 있는 건물은 별도의 건물처럼 보이나 이 건물과 연결된 단일 건물이다.
# 인천흥업주식회사
중구 용동 152-6번지에 위치한 건물로 대지면적은 1천322.3㎡, 지상 2층 조적조 건물로 연면적은 82.7㎡이다. 이 건물의 건축연도에 대해 인천남부종합학술조사에는 1910년대로 추정했으나, 건축양식이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신청사, 인천미두취인소 등과 비슷한 것을 보아 1930년대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 인천흥업주식회사
보인다. 정면 출입구 상부에 ‘인천흥업주식회사’라는 간판이 있으나, 현재는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은 비어 있다. 1층 중앙부에 출입구를 설치하고 1, 2층에 오르내리창문을 설치한 좌우대칭 건물이다. 1층과 2층 창문 사이를 변화를 주어 장식하는 방식은 인천지역 근대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건물 후면에는 1층 건물을 덧대어 세웠으며, 뒷부분에서 출입구가 있다. 또한, 정면과 좌우에 패러핏을 설치해 지붕을 감췄기 때문에 앞에서 보면 건물 지붕이 평지붕처럼 보인다.
# 고전(古田)앙품점 (사진 제일 위)
고전 양품점은 일본식 기와를 올린 합각지붕 건물로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중앙동 4가 8-4번지에 위치한 이 점포는 다른 상점과 달리 외관에 서양식 건축양식을 적용했다. 즉 1, 2층 사이의 외벽에 눈썹지붕이 없고, 2층 창문은 오르내리창으로 처리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식 건물과 모더니즘 계열의 건물도 현존하고 있다.
# 대한통운 창고

▲ 대한통운 창고
이 건물의 건축연대에 대한 건축대장의 기록은 1948년이지만, 정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매립 이후 부두 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이 건물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1899년 5월 말에 매립됐다. 매립지 1만3천223.2㎡ 중 6천611.6㎡을 창고와 시장 부지로 사용한다는 기록에서 이 건물도 이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적벽돌로 벽체를 구성하고 지붕은 트러스를 올렸다. 현재의 지붕 마감재는 슬레이트다. 출입구 상부에는 환기를 위한 작은 문이 있다.
(※ 자료제공 : 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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