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달콤한 인생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달콤했던 순간을 적어도 한 번쯤은 경험하게된다. 그리고 그 달콤했던 순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오래된 사진첩처럼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다.
하지만 달콤했던 순간은 달콤함의 정도에 따라 그 뒤에 맛보아야할 씁쓸함이 커진다는 불가결을 감수해야만 하는 조건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 <반칙왕> <장화홍련> 등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온 김지운 감독의 2005년작 <달콤한 인생>은 그런 영화다. 잠시 잠깐 달콤한 순간에 빠졌던 한 남자가 그 달콤함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느와르 액션을 표방한 이 영화는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황정민, 김뢰하, 오달수, 김해곤, 문정혁(에릭), 이기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이 대거 스크린에 얼굴을 비친다는 것만으로도 영화 팬들에게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주로 서울과 부산, 경기도 일원에서 촬영된 터라 언뜻, 이 영화도 인천의 모습을 담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기 힘들 수도 있으나 분명히 영화 속에는 매우 중요한 장소로 인천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천의 장소는 지금은 '아암물류1단지'로 불리는 준설토 투기장과 '수협중앙회 인천공판장'이다. 두 장소 모두 이야기의 전환부에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수협중앙회 인천공판장'으로, 이곳은 주인공 '선우'(이병헌)가 조직의 보스 '강사장'(김영철)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려는 순간 괴한들에 의해 납치 폭행을 당한 뒤 끌려가 묶여있던 장소다.
'백사장'(황정민)과 해결사 '오무성'(이기영) 일행은 '선우'를 경매장 건물 천정에 밧줄로 묶어놓고 집단 린치를 가하려하고 선우는 이때까지만 해도 상대편 세력인 백사장파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줄로 안다.
주인공 이병헌이 경매장 천장에 대롱대롱 묶여있는 상황에서 한 아줌마가 바닥에 흥건한 피를 아무런 느낌 없이 대걸레로 닦는 모습은 마치 냉정한 지하세계의 모습을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동시에 이곳은 주인공 선우가 달콤함 뒤에 오는 씁쓸함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장소이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출발점인 셈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우울한 장면의 장소로 등장했지만 실제 수협중앙회 인천공판장은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매일 새벽 5시30분에 경매가 시작되는 이곳에는 수도권에서만 하루 평균 100여 명 이상의 소매상들이 운집해 넓은 주차장에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보통 하루에만 600상자 이상의 선어류가 2시간 안에 모두 판매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이곳의 연간 거래량은 지난해 기준 196억원에 이를 정도다. 멀리서는 여수에서 올라오는 냉동 어류들도 판매가 되지만 주로 연안에서 작업한 배들의 수확물이 판매된다.
일반인이 내부까지 들어갈 볼 수는 없지만 연안부두로 가는 연안사거리에서 인천해양경찰서방면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외부 전경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복수를 결심한 선우가 '백사장'을 불러내기 위해 '오무성'이 일하는 공판장으로 찾아가는 장면에서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는 신이 이 도로에서 촬영된 것이라 영화를 느끼기에 부족함은 없다.
인천시에서 인근에 있는 다른 공판장 2곳과 이곳을 하나로 합쳐 2013년까지 '수산물 유통센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계획이 본격 추진된다면 1973년 개장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영화 속에 등장했던 공판장의 모습 그대로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 싶다.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우가 복수를 결심하고 총을 구입하려 불법 무기 판매 접선책과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가 '아암물류 1단지'이다.
마치 사막을 연상시키는 허허벌판 위를 먼지를 내며 폐차 직전의 자동차가 달려오면 선우 앞에 선다. 그리고 창문이 내려지면서 운전석에 앉은 접선책 '명구'(오달수)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흡사 서부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휑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7년을 개처럼 일해 왔지만 한 순간의 달콤한 경험으로 밑바닥으로 떨어진 선우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장면이다.
개항 100주년 기념탑 사거리에서 바닷가로 나아 있는 인항로를 따라 끝까지 가다보면 좌측으로 컨테이너들이 즐비하게 쌓여있는 '아암물류 1단지'를 만날 수 있다.
준설토 투기장으로 불리며 제1투기장과 제2투기장으로 나누어져 조성된 이곳의 총 면적은 100㎡에 이르며 1990년도부터 2002년까지 조성됐다.
주로 컨테이너처리 및 냉동·냉장 창고 부지로 활용되는 이곳은 영화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현재 많은 컨테이너들이 넓은 대지를 그대로 덮고 있는 상태다.
촬영될 당시만 해도 영화 속에 보이는 것처럼 선우의 등 너머로 야적된 컨테이너들의 모습만 보일 뿐 선우가 발을 딛고 서있는 장소는 넓은 공터라는 느낌을 넘어 거의 사막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나 지금은 이곳에 모두 컨테이너들이 쌓여져 있어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해 볼 엄두를 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고독감과 삭막함마저 들게 했던 영화에서의 모래 바람은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다.
개항 100주년 기념탑 사거리에서 '아암물류 1단지'까지 이어져 있는 주도로인 인항로를 제외하면 물류단지 안은 영화속 모습처럼 비포장의 맨 바닥이어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지금도 차량이 잠시잠깐 정차해 있으면 그새 본닛 위를 뽀얗게 덮을 정도의 흙먼지가 분다.
주위를 둘러싼 컨테이너들 사이의 흙바닥에 서서 눈을 감은 채 황량한 벌판을 상상하면 까칠하게 살결에 와 닫는 흙먼지가 영화 속 선우의 허전한 마음처럼 느껴진다.
/글·사진=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
보스의 명령을 거역한 죄 - 전쟁은 시작됐다
영화 <달콤한 인생>(감독 : 김지운 / 제작 : 영화사 봄)은 날카롭고 냉혹한 남자들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감성이 살아있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만드는 구성이 폼 나는 남자를 만든 작품이다.
네온사인과 갖가지 조명이 밤 하늘을 수놓는 서울의 밤 바다, 그곳에 섬처럼 떠 있는 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그 곳을 책임지는 이는 룰을 어긴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처단하는 냉혹한 보스 '강사장'(김영철)에게 정확하고 냉철한 일 처리로 신뢰를 얻고 있는 '선우'(이병헌)다.
선우는 강사장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스카이라운지의 경영을 책임지기까지 꼬박 7년의 세월을 개처럼 일했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조직세계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강사장의 유일한 약점은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의 존재다.
어느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의혹을 가진 강사장은 자신이 출장을 간 사이, 선우에게 그녀를 감시하고, 그 의혹이 사실이면 알아서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선우는 희수를 감시하는 3일 동안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희수를 보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희수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하는 선우. 하지만 마지막 순간, 선우는 알 수 없는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인생의 첫 실수를 예감하게 되는 선우. 그러나, 그 예감의 실체를 채 깨닫기도 전에 괴한들이 들이 닥치고, 지옥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 버려진 선우에게 강사장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들을 놓아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단 한 순간에 불과했던 이 선택으로 인해 선우는 어느 새 적이 돼 버린 조직 전체를 상대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영화는 홍콩식 느와르의 색깔이 묻어난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감정의 고리를 잠시 잠깐 놓은 것을 이유로 스카이라운지에서 냉혹한 밑바닥 세계로 치닫는 구성은 영화의 제목처럼 달콤한 유혹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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