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천의관광,가볼만한곳

인천향교

by 형과니 2023. 5. 1.

인천향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3 11:27:56

 

 

'인천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고려()와 조선의 대표적인 지방 교육기관이다. 인천향교가 언제 건립됐는 지 정확한 연대를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1398년 태조 7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9010월 인천시 유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됐으며 매년 2, 8월에 석전대제를 지낸다. 매월 초일과 보름에 문묘분향을 하고 있기도 하다.

 

향교는 전국 각지에 설치된, 나라가 세운 '관학'이었다. 향교에선 지방의 민풍과 예속을 순화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지방관청이 직접 관할한 것은 이 때문이며 제향과 교육, 교화의 3대 기능을 갖고 있었다

 

향교에는 문묘와 동무, 서무, 그리고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 있으며 성균관과 같은 구조로 짜여져 있다. 향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소학, 사서, 오경, 근사록 등이었다.

 

석전대제란

인천향교에선 매년 음력 2, 8'석전대제'를 지낸다. 이 때 공자와 함께 정몽주, 최치원 등 성현들의 학덕을 추모한다.

석전대제는 이처럼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 제사로 예법과 음악을 존중하는 국가의 의례이다. 문묘대제, 석전제(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유교 교육을 위한 국립중앙대학)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372)으로 석전도 고대 중국의 제사관례에 따라 행하였을 것으로 학계에선 추정한다.

 

석전대제는 영신례, 전폐례, 초헌례, 공악,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의 순서로 이뤄진다. 의식을 치를 때 연주되는 음악은 문묘제례악이라 하는데, 기악과 성악, 춤을 총칭하는 대성아악으로 연주된다.

 

석전대제는 이처럼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곁들여지는 종합예술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조상들은 이 의식을 통해 나라에 충성하고 효도하는 마음을 길렀으며,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석전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큰 의식행사로, 국가는 석전대제를 중요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문묘 참배 방법

대성전 동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이 때 오른발을 먼저 올리고 왼발을 붙이는 방법으로 계단을 오른다. 이어 대성전 중앙에 있는 향을 조금 집어 향로에 분향을 한다. 다음 왼손이 위로 오게(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오게) 양손을 포갠 뒤 머리를 깊숙이 숙여 공손히 절을 한 뒤 잠시 묵상을 한다. 참배가 끝나면 서쪽 계단으로 왼발을 먼저 내딛고, 오른발을 붙이는 방법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인천향교의 문화 프로그램

인천향교에서 약간 떨어진 '인천향교 유림회관'(남구 학익동 6771)에서는 '명륜학당''충효교실, 예절, 인성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명륜학당은 여성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한글, 한문서예, 한문, 윤리, 예절, 다도, 사서삼경 등 일반 학교과정을 통해서는 배우기 쉽지 않은 과목들을 개설해 놓고 있다.매년 방학기간인 78월은 초···대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실, 예절·인성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다.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은 시내버스 4, 6, 13, 27, 64번을, 마을버스는 515, 523번을, 좌석버스는 111번을 각각 타면 된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문학경기장역에서 내려 야구장 방면으로 나오면 인천도호부청사가 있으며, 그 옆에 인천향교가 있다. 310월엔 오전10오후7시까지 문을 열며, 112월까지는 오전 10오후6시까지 개장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문의 032-876-7041 /·사진=김진국기자(블로그)freebird

 

 

하늘을 향해 길게 솟은 붉은 기둥. '홍살문''인천향교'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잡귀는 들어갈 수 없고 일반인들도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해야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홍살문 앞 '하마비' 역시 이 곳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라는 뜻으로 세워진 비석이다.

 

홍살문이 액자라면 인천향교는 그림이다. 커다란 네모 테두리 안 쪽으로 '인천향교'의 작고 아담한 외삼문이 그려져 있다.

홍살문 오른 쪽에 여러 개의 비석이 늘어서 있다. 대대로 인천의 도호부사를 맡았던 관리들의 업적을 기리는 선정비이다. 비석에는 관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늘어선 비석들 가운데 하나가 비어 있는 모습이다. 그쪽으로 다가간다. 가까이서 보니 비석 가운데 하나가 뽑혀져 있고, 움푹 패인 채 받침돌만 있다.

 

"그 자리는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박제순의 비 였어요. 이 삼년 전에 시민들이 뽑아서 없애버렸지요."

 

김정희 인천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인 박제순은 동학농민 때 토벌군으로 나가기도 했다"며 비석이 뽑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한다. 박제순의 비가 뽑힌 자리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들어차 있다. 역사란 얼마나 준엄한 것인가.

 

홍살문을 지나 향교로 올라간다. 외삼문의 오른쪽 문으로 들어선다. '명륜당'16세에서 40세까지 학동들이 향학열을 불태운 곳이다. 양반은 물론 평민의 자제들까지 이 곳에서 글을 읽으며 신분상승을 꿈꾸었다. 명륜당 양 옆에 자리한 '동재', '서재'는 각각 양반 자제와 평민 자제가 기숙하던 방이다. 조선시대 중기 사립학교인 '서원'이 생기기 전까지 향교는 교육, 제사, 주민교화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서원이 생기면서 기능은 제사의식으로 치우치게 됐다. 옛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명륜당 뒤 쪽에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2월과 8월이면 이 곳에서 '석전대제'가 치러진다. 온고이지신. 학생들은 공자, 최치원, 정몽주와 같은 성현들의 학식을 동경하고 인품을 흠모하며 그들의 궤적을 좇아갔다.

 

대성전을 등지고 명륜당을 지나 인천향교 외삼문을 나온다. 지난 여름에도 많은 비가 내렸는데, 또다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들고 홍살문까지 내려온다. 액자 같은 홍살문을 통해 그림 같은 향교를 올려다 본다.

 

300년 전에도 인천향교는 저 모습 그대로 저 자리에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숙연함이란.

'인천의관광,가볼만한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래역사  (0) 2023.05.04
남동관문교  (0) 2023.05.04
북성부두  (0) 2023.05.01
약대이 병원과 성공회 한옥성당  (1) 2023.05.01
전등사-민초와 함께한 호국불교의 역사 간직  (0)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