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8-07-26 16:11:19
서해 평화지대를 가다-15
연평도-1
희망의 바다인가, 아니면 저주받은 바다인가. 누가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그 곳은 늘 풍족했다. 철따라 때 따라 창고는 그득했다. 자연의 힘이었다. 그 만큼 시샘도 컸다. 보물창고인 바다를 놓고 아귀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 주인인 듯 발을 담그지 못해 안달이었다. 급기야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상잔(相殘)도 벌어졌다. 연평해전이었다.
늘 베풀어 줬던 자연의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의 오만이었을까? 자연은 더 이상 마음을 열지 않았다. ‘피폐(疲弊)’. 도무지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인간사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제서야 자연의 혹독함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알량함을 드러내고 있다.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황금어장은 필시 연평도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370여 전의 문헌기록에서도 연평도의 조기는 이름을 떨쳤다. ‘석수어(石首魚·조기)가 해주목(海州牧) 남쪽에 있는 연평에서 산출되는데 춘하지교(春夏之交·4~5월)에 도처의 어선들이 모여 이를 그물로 잡으며 관(官)에서는 그 세금을 징수해 재물로 쓴다.’(세종실록 지리지)
연평도는 조기가 산란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해주만과 옹진반도 연해에 발발된 모래톱이 조기들의 산란 장소였다. 여기에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등 부유미생물이 풍부한 강물이 닿는 곳이라 조기치어의 먹잇감이 풍부했다.
조기는 동해에서 월동한 뒤 3월쯤 서해안 측산도 쪽으로 북상한다. 충남 격렬비도를 거쳐 4월 하순쯤 연평 앞바다에 올라온 조기는 30~40일 동안 산란한다. 연평도서 잡힌 조기가 알을 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달라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도는 조기파시로 장사진을 이뤘다. 4~6월이 되면 물 반, 조기 반인 연평도에 전국 각지에서 3천~4천 척의 배가 몰려들었다. ‘연평도에 돈 실러 가세’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조기파시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 ‘철새’로 불렸던 술집 아낙네(酌婦)만도 600여명, 술집은 150여군데에 달해 연평도가 미어터질 정도였다. 소연평도를 포함해 연평도에 현재 807세대(주민수 1637명)가 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기파시가 연평도를 먹여 살렸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수백 년을 이어가던 ‘연평도의 조기전설’은 1960대 후반에 막을 내렸다. 동해와 서남해를 거쳐 연평도로 올라오던 조기가 오간데 없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었다.
연평 주민은 아우성이었다. 당장 끼니를 거를 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8년 어로한계선은 남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한국전쟁 이후 연평도 코앞에 북방한계선(NLL)이 쳐지고 잦은 군사적 충돌로 정부가 북한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어로한계선을 그어 북한과 거리를 둔 것이었다.
먹고 살 길이 없었던 주민들은 연평도를 떠나기 시작했다. 궁여지책, 연평도의 무인도화를 우려한 정부는 197 970년대 초 해태양식사업 지원을 통해 주민들을 연평도에 묶어뒀다. 이래서 생긴 법이 서해5도서특별대책사업이었다. 당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사람은 죽으라는 법이 없는 것일까? 서해5도서특별대책사업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던 연평도 어민에게 ’꽃게’라는 선물이 내려졌다. 연평도 앞바다가 꽃게 천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꽃게 최대 서식지는 충남 서산 앞바다와 연평도 사이다. 꽃게는 산란기인 5월~9월에 중국 양자강 하구에서 한반도 서해 연안으로 이동해 여름철에 산란을 한다. 산란장소가 바로 연평도 앞바다다.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연평도(서해특정해역 포함)의 꽃게어획량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생산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꽃게전쟁’으로 불리는 연평해전도 터졌다. 북한과 경계선에서 꽃게가 나오는 바람에 남과 북이 서로 꽃게잡이에 혈안이 됐던 것이다. 북한도 남쪽으로 내려오고, 남한도 북쪽으로 넘어가 서로 더 많은 꽃게를 잡으려고 어장확보 다툼에 난리를 피웠다. 여기에 쌍끌이 조업으로 꽃게 씨를 말리는 중국 어선들도 극성이었다. 200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중국 어선은 한때 700여척을 넘어섰다.
그 많던 꽃게는 2000년대 들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3년 정점을 끝으로 연평 앞바다에 꽃게 자취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 218만1천561㎏했던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2007년 74만9천537㎏으로 3분의 2가량이 줄었다.
지금 연평도는 꽃게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1960년대 말 ‘조기의 실종’과 똑같은 형국이다. 연평 앞바다에서 사라지고 있는 꽃게의 원인을 놓고 말들이 많다.
중국어선의 쌍끌이 조업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현지어민들의 남획에 그 까닭이라는 이들도 있다. 그 가운데 유력한 단초는 바다 쓰레기다. 연평도 현지어민들 대부분은 꽃게가 붙은 그물을 육지로 날라 처리하지 않고 있다. 배에서 꽃게를 딴 뒤 그 그물은 도로 바다에다 버리고 있다. 꽃게 치어가 그물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평도 어민들은 지금 난리다. 꽃게로 먹고 살던 어민들이 꽃게가 나오지 않자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25억 원을 들여 감척사업을 벌였다. 다른 지역보다 척당 4천만 원을 더 들였다. 하지만 감척대상 어선을 둘러싸고 비리가 터지고 있는 형국이다.
글=박정환·조자영기자 hi21@i-today.co.kr
사진= 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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