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8-09-18 01:13:27
천년 세월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푸른빛이여
서해 평화지대를 가다-(19)대청도[1]
‘포을도(包乙島)’.
1천여 년 전 후삼국시대 사람들은 대청도(大靑島)를 이렇게 불렀다. 포을도? 이름만으로는 얼른 대청도와 무슨 연관이 있는 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옛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렀을까?본디 대청도는 숲이 울창했다. 백령도와 연평도까지 합한 서해5도 중 대청도에는 가장 높은 산이 있다. 해발 343m인 삼각산(三角山)이다.
황해도 해주시 북쪽의 멸악산맥의 줄기를 이어 받은 수양산맥(首陽山脈·해발 899m)에 딸린 산이다. 차라리 대청도는 주봉(主峰)인 삼각산이 일군 거대한 산이라는 표현이 옳다. 전체 면적 15.38㎢중 84.91%가 산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다보니 멀리서 본 대청도의 빛깔은 푸르다 못해 거무스레하다. 당시 배를 타고 중국을 오가는 뱃사람들이 항해 중에 꼭 거쳐야만 하는 ‘푸른’ 대청도를 보고 ‘포을도’로 불렀다. ‘푸른 섬’을 그 음에 따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대청도란 이름은 고려시대 처음 문헌에 나타난다. 1123년 송나라 서극(徐剋)이 고려로 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여행기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였다. 서극은 여기서 ‘대청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산림이 울창한 모습이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먹 같다 해서 고려인이 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름 속에 짙게 배여 있는 명성은 1천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곳이 대청도다.
북위 37도 52분. 얼핏 추운 북쪽에 치우쳐 사계절 늘 푸른 나무들이 자랄 것 같지 않은 대청도, 그 속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토록 푸를까?’도 싶다.
우선 양지동이며 옥주동, 서내동 할 것 없이 마을 한 복판에는 검푸른 잎을 하고 있는 검팽나무들이 어김없이 우뚝 서 있다. 하나같이 100년은 족히 넘을 듯한 아름드리나무들이다.
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탄동의 동백나무 군락도 빼놓을 수 없다. 사탄동 서쪽 내동으로 이르는 고개 밑 비탈진 곳에 모여 자라는 이곳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식물 분포 상 자생하는 동백나무의 북방한계지라고 해서 천연기념물 66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제주도와 울릉도 등 따듯한 남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대청도 사탄동까지 온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탄동은 삼각산을 동쪽에 두고 서쪽 계곡 밑에 산으로 둘러싸인 옴폭 들어간 남서향의 해들 마을이다. 그 만큼 따듯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다로 둘러쳐진 대청도 자체가 겨울철 난류의 영향을 받아 한창 추울 때인 1월 평균기온이 인천보다 2.4도 높은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이런 연유로 한반도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대청도는 중부 이북에 자라는 식물보다 중부 이남에 자라는 식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민속식물연구소 송홍선 박사가2003년부터 2008년 9월까지 대청도 식생분포를 조사한 결과, 멱쇠채 등 10여 종류가 북방계이고, 동백나무·후박나무·합다리나무 등 30여 종류가 남방계로 조사됐다.
그 중 특징적인 것은 남방계 식물인 후박나무와 실거리나무다. 이들 나무 역시 대청도가 북방한계지로 알려져 있다.
늘 푸른 후박나무는 지금까지 충남 이남에서만 자라는 난대 수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딸린 늘 푸른 넓은 잎 큰키나무로서 소흑산도·제주도 등 주로 남부지방에 자라는 전형적인 난대수종이다. 그동안 한국의 북한계지는 내륙의 경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부안 격포리, 해안은 동해의 울릉도(북위 37도 30분)로 학계에 보고돼 있었다.
푸른 때깔의 잎이 빛나는 딱 한 그루인 대청도의 후박나무는 고주동 사갓봉 동북쪽 아래 ‘물꼴’마을에서 숨을 죽이며 자라고 있었다. 계곡에 물이 흐른다 해서 붙여진 ‘물꼴’은 1·4후퇴 때 피난민 30여 가구가 모여 살다가 사탄동 등지로 떠나 폐허가 된 마을이다. 여간해선 찾을 수 없는 계곡에다 바람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절벽 틈 속에 자리를 잡은 이 후박나무는 높이 4m, 가슴높이 지름이 8㎝이다.
송 박사는 “후박나무가 대청도에서 자생할 수 있는 데는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철의 기온이 내륙보다 높은데다 생육장소가 바닷가 수직바위 위의 또 다른 바위가 바람을 막아줬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탄동에서 서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와 넓은 들판이 만나는 ‘지두리끝’. 해발 88m의 평평한 산봉우리 주변은 온통 ‘실거리나무’의 밭이었다. 발그스레한 줄기에 갈고리 가시를 하고 있는 이곳 실거리나무 군락은 국내 최대의 규모라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실거리나무는 남해안과 남쪽 섬 지방에서 자라는 갈잎떨기나무다.
이 밖에도 대청도는 남방계 희귀식물이 지천이다. 두루미천남성과 낙지다리, 창포, 정향풀, 초종용, 흰병꽃나무… 여기에다 사탄동 장수리 해변과 옥죽동 진입로 사이로 노송보호지역 등 대청도 곳곳엔 50~150여년 된 적송군락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청도에는 요즘 대청부채가 눈에 띄게 사라져가는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 하고 있다. 혹자는 대청부채의 희귀성이 알려지면서 남몰래 캐는 남획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소나무 등 침엽수와 갈참나무 등 활엽수 밑에서 자라는 난 종류인 대청부채가 키 큰 나무의 극성에 못이겨 자연도태를 했다고 논리를 편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섬 곳곳에 방목한 흑염소 때문이라는 지적한다. 독초를 빼고는 못 먹는 것이 없을 정도로 왕성한 먹성을 보이는 흑염소들이 섬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풀이라는 풀은 죄다 뜯어 먹는다는 것이다.
그 방증으로 독초인 두루미천남성은 대청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데 대청부채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에 키우다가도 뛰쳐나가서 야생하는 방목 아닌 방목을 하는 흑염소에 대한 적절한 관리도 필요할 때다. 글=박정환·조자영기자 hi21@i-today.co.kr 사진=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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