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의 애인, 영화배우 유신방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문화예술인 考
2008-08-12 00:43:26
나운규의 애인, 영화배우 유신방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아주 생소한 이름이어서 누구도 유신방(柳新芳)이 인천과 연관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천지역의 어떤 자료에도 그녀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 인천의 원로들조차도 전혀 이 여배우의 이름 ‘유신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 벙어리 삼룡 1929
여배우 유신방은 누구이며 인천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1932년 1월에 발간된 잡지 『삼천리』의 기사가 그 가느다란 해답을 던지고 있다. 그에 관해서는 2007년 2월에 발간된 『인천학연구·6』에도 인용이 돼 있는데, 유신방은 ‘나운규와 사랑을 맺을 때 비단 손수건에 러브레터를 써 보내 영화 「사나이」에 출연한 오향선’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오향선에 대한 짧은 언급이 고일(高逸) 선생의 『인천석금』에 보이는 것이다. “한 때 인천의 명기로 이름을 날렸던 오향선도 기악과 단가는 물론 바둑을 두고 바이올린도 켤 줄 알았으며, 사군자도 치고 글씨도 잘 썼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으로써 유신방은 인천에서 기생 노릇을 하던 명기 오향선이며 이것이 인천과의 ‘가느다란’ 인연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유신방 즉, 오향선의 신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토박이 인천사람인지도 알 수 없고 가계나 인천에서의 정확한 교육 정도, 기생이 된 연유도 전혀 불명하다. 더구나 그녀가 용동권번의 기생이었는지에 관해서도 현재로서는 확인할 자료가 없다.
『인천학연구』에 실린 논문에는 “유신방은 오향선(吳香仙)이란 이름을 쓰던 용동권번의 기생이었는데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 나운규에 의해 캐스팅되었다.”고 단정하고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인천석금』에도, 또 ‘과거 인천 이야기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인천 한 세기』나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도 그런 류의 설명은 한 마디도 나와 있지를 않다.
물론 ‘기악과 단가는 물론 바둑을 두고 바이올린도 켤 줄 알았으며, 사군자도 치고 글씨도 잘 썼다.’는 고일 선생의 말로 미루어 그런 정도의 재능을 몸에 익혀 가지려면 적어도 권번에서처럼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수업을 받았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그렇게 기술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영화 사나이
아무튼 용동권번에 속해 있었든, 인천의 다른 기루(妓樓)에 있었든, 오향선은 술집에 놀러온 나운규(羅雲奎)를 만나 그의 연인이 되고, 영화 「사나이」에 출연함으로써 영화배우 유신방이 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1927~8년 무렵일 것이다. 훨씬 훗날인 1937년, 『삼천리』 잡지 1월호에 실린 나운규의 대담이 그것을 사실로 확인해 준다. 거기 대담 일부를 원문 그대로 옮긴다.
“문-「사나히」는 었든 것이든가요.
답-돈 가진 집안 자식이 아버지에 불평을 품고 뛰어나와 활동하는 것인데 여러 가지 장애가 있어 실패하고만 작품이 되었지요.
문-여자 스타는 누구였든가요?
답-유신방이라고 새로 나온 이지요. 인천에 놀러갔다가 내가 발견했지요. 인천서 기생노릇을 하든 여성입니다. 그러나 어느 여자고보(女子高普)를 마친 인테리 여성이었지요. 문학을 좋아하여 스사로 붓을 드러 시도 짓고 극도 쓰느라 하였고 풍모도 교양이 있느니 만치 인테리의 근대적 여성으로 보였지요.
문-나히는.
답-그때 수물세살.”
이처럼 나운규의 대담 기사를 통해 배우 유신방, 즉 오향선이 나운규를 만난 것과 영화 「사나이」의 주인공이 된 내력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그녀가 고일 선생의 기술과 비슷하게 시 같은 문필에 재능이 있으며, 학력도 여자고보를 나온 인테리 여성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인천에는 전혀 그녀에 대한 기록이 없고 근자까지 구전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당시 유신방의 나이가 스물세 살이라면 그녀의 출생연도가 1904, 5년임을 알 수 있는데, 그 나이는 고일 선생보다 한두 살이 어린 비슷한 연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번의 다른 기생들, 이화자나 장일타홍이 가수로 활약한 사실은 단편적이나마 기록하고 있으면서 어째서 유신방에 대해서만은 그런 내용을 기록하지 않은 것일까.
“인천의 명기 오향선은 용동 마루터 평양관 옆에서는 ‘낙원’을, 큰 우물가에서는 ‘용궁’이라는 바를 각각 경영하다가 광복 후 ‘쾌활림’이라고 이름을 고쳐 식당과 바를 시작했다.”
▲ 유신방 얼굴
이것은 오향선에 대한 고일 선생의 마지막 후일담 기록인데, 오향선이 배우 생활을 접은 훨씬 훗날임에도 불구하고 ‘배우 유신방과 오향선은 전혀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인물인 듯’ 하다못해 전직 배우 운운하는 이야기조차 한 마디가 없다.
오향선은 영화배우 유신방으로서 어떤 활약과 평가를 받았을까. 유신방이 출연한 영화는 모두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로 1928년 「사나이」, 1929년 「벙어리 삼룡」, 1930년 「아리랑 후편」등이다. 특히 「벙어리 삼룡」은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그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보자. 1940년 2월 16일자 조선일보의 기록을 『인천학연구』에서 재수록한다. 유신방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비슷하게 ‘유방향(柳芳香)’이라고 한 것이 특이하다.
“유방향(익명)이라는 여자, 그때 영화배우로서 제일 얼굴과 체격이 좋았고 언뜻 보기에도 어딘지 깊숙이 끄는 데도 있겠지만 또 파탈하고서 맘껏 놀 수도 있는 여자다. 나씨는 이 여자로 해서 그의 성격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이때로부터 예술가로서 불타는 제작욕보다 인생의 향기를 찾아 헤매게 되는 동안 그는 돈 쓰는 게 거칠어지고 이 거칠어진 돈 쓰는 방법은 나씨 이후의 영화계의 한 풍속이 되어서 결국 나씨는 조선영화계의 큰 은인이면서도 지금까지 똑똑한 영화기관이 없는 그 원인을 추궁한다면 나씨가 책임을 져야 할 과실도 된다. 젊은 여자 유방향은 조선 영화의 요화(妖花)였다.”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소설가 심훈(沈熏) 역시 1931년 7월 잡지 『동광』에 그녀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사나이(1928) 속 유신방
“나운규 군의 적발(摘發)로 인천 기원(妓園)에서 뛰어 나와 「사나이」, 「벙어리 삼룡」등에 나왔다가 다시 환원하였다고. 독부(毒婦) 역(役)으로 쓸 만한 사람이었다.”
왜 이런 모질다면 ‘모진’ 평판이 났을까. 『인천학연구』의 「일제시대 인천권번에 대한 연구」논문에는 “유신방은 천재 나운규를 파탄에 이르게 한 주인공으로 영화사에서 기억된다. 나운규가 영화에 쏟아야 할 열정과 집념, 시간과 돈을 유신방과의 연애에 쏟아 부었다는 지탄이 이어졌다. 「벙어리 삼룡」을 찍던 시절, 카메라를 잡히고 돈을 뽑아 당시 애인이었던 인천 기생 유신방과 인천 송도에서 해수욕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유명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그녀는 나운규와 헤어져 입산수도한다. ‘나운규가 영화 「철인도」를 촬영하다가 자금난에 빠지자 유신방이 개성권번에 들어가 그곳의 한 부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서 영화를 완성케 했는데, 후에 나운규가 그녀에게 권번 생활을 청산할 것을 종용하면서 나운규와 인연을 끊고 불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불자가 된 사실은 1932년 『삼천리』에 실린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기사’에서도 나타난다.
“『벙어리 삼룡』에 주연하신 유신방 양은 영화를 떠나 지금은 금강산에서 삭발 위승(爲僧)으로 속세를 단념하시고 염불을 하시면서 정화 길을 닦고 계십니다.”
심훈이 쓴 ‘환원’이란 단어는 그 후 다시 기생으로 돌아갔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곧 고일 선생이 무덤덤하게 기록한 “용동 마루터 평양관 옆에서 ‘낙원’과 큰 우물가에서는 ‘용궁’이라는 바를, 경영하다가 광복 후 ‘쾌활림’이라고 이름을 고쳐 식당과 바를 했다.”는 기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유신방은 1970년대까지도 생존했으며 같은 영화배우였던 신일선(申一仙)과 같이 불교에 귀의해 입산수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자료가 없다.
전직 영화배우 유신방이 해방 이후 인천에서 식당과 바를 경영했었다면, 더군다나 한국 영화 역사의 신화, 나운규와 공연한 영화배우였다면 최소한 구전(口傳)이라도 남아 있을 법한데 우리 인천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비록 영화사(映畵史)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 같은 의문들을 푸는 연구는 이제 우리 인천의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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