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속 개항기 인천-(3)신찬 인천사정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8-25 00:59:36
개항기 인천 상황 종합 정리
문헌 속 개항기 인천-(3)신찬 인천사정
이 책의 편자들은 인천개항사를 비롯하여 상업과 무역, 내지 행상, 운수·교통, 해관, 행정 교육, 종교, 신문지, 생환, 풍속, 기후 풍토, 위생 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권두에 삽입된 <인천거류지지도>는 1890년대 후반 인천의 주요 기관과 건축물 배치 상황을 알 수 있는 약도로 개항기에 발간된 인천 안내 지도 가운데 그 내용이 가장 충실하다. 이 책은 개항기 인천의 경제구조 및 조계지의 사회상, 풍속 연구에 다양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자료이며,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천을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경기·충청·황해·평안 4도 무역의 길목으로서, 한국의 개항장 가운데 제일가는 시장”이며 “군항으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부근 연안에서 가장 지세가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그 지리적 관계가 일본의 요코하마와 같은 곳”이어서 발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상업과 무역’은 이 책의 편자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는 분야로 수입과 수출의 변화 추세, 수출입 품목, 화폐, 금융, 내륙 행상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개항장 인천의 화폐는 일본화폐, 한국화폐가 동시에 사용되었으며 일부이긴하나 멕시코 달러도 통용되고 있었으며, 금융기관으로는 일본인 다이이치은행, 다이주하치은행, 다이고주하치은행이 있었고, 중국계인 상하이홍콩은행, 러시아계인 러한은행 등이 인천항에 지점을 개설하여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개항기 인천항에는 우표, 전신·전보를 담당하는 기관들도 국가별로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인천 개항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풍속이 가장 화려하고 생활이 사치스러웠던 때는 1889년과 90년 무렵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20엔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 25엔의 생활을 하고, 100엔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150엔의 생활을 하고, 상점 점원과 짐꾼도 몸에는 비단옷을 걸치고 가슴에서는 금목걸이가 반짝거리고 마닐라 염궐련을 피우고 높은 모자를 쓰고 완전한 신사처럼 차리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었다.
저자는 개항장의 일본인들의 ‘경조부박’한 생활 기풍을 개선해야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적은 『인천번창기』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반복하고 있다.
『신찬인천사정』(1898)이 발견되면서 개항기의 중요한 인천안내서는 대부분 공개된 셈이다. 『신찬인천사정』은 『인천사정』(1893)의 개정증보판이며, 그 체제와 내용은 『인천번창기』(1903)로 이어진다.
개항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발간된 『인천사정』이나 『인천번창기』와 같은 주요 인천 안내서는 일본의 해외 해외경영, 식민 개척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된 편찬 의도는 인천의 일본인들에게는 식민도시 개척의 자부심을 갖게하고, 본국의 일본인들에게는 인천의 번영상을 소개하여 해외 진출을 장려하려는 것이다.
※ 이 자료는 연세대 도서관에 소장된 원본을 인천학연구원에서 번역 및 해제를 통해 새로 발간한 것이다. 자료제공 = 화도진도서관
'인천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외교의 1번지였던 제물포 (1) | 2023.05.13 |
---|---|
문헌 속 개항기 인천-(2)‘조선신보’-‘조선신문’ (0) | 2023.05.13 |
근대화의 중심지 인천의 모습 (0) | 2023.05.11 |
인천과 병와 이형상 (0) | 2023.05.10 |
소 서 노 (0) | 2023.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