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수도의 시원/송현배수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0-11 20:47:55
인천수도의 시원/송현배수지
《손장원의 ‘辛’인천근대문화유산답사》
대구 대봉배수지
시민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시설은 근대도시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 인프라 가운데 하나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수도를 통해 일반가정에 물이 공급되기 시작한지 10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지자체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뚝도정수장 송수실을 리모델링하여 수도박물관으로 개관했으며, 인천시도 ‘인천상수도100년사’ 발간과 ‘미추홀참물사랑 페스티벌’을 앞두고 있다. 페스티벌이 인천수도의 시작점인 송현배수지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인천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물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기에 도시생활에서 상수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게 분명하다.
송현배수지는 이러한 중요성 때문인지 아니면 제수변실의 특이한 형태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았고 이를 다룬 글도 여러 편이 있다. 이러한 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시설', ‘수도국산’, ‘제수변실’이란 표현을 쉽게 접하게 되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최초’니 ‘시원’이니 하는 말이다. 근대문물이 인천을 통해 들어온 탓에 인천에는 최초가 많다. 그렇다보니 수도도 인천이 최초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수도시설은 서울에 만들어졌다. 즉, 1906년 8월에 착공한 뚝도정수장의 완속여과지공사가 1908년 8월 완공되어 9월 1월부터 서울 4대문안과 용산일대에 하루 12,500㎡의 급수가 시작되었다.
통영 문화동배수지 제수변실 외형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수도시설의 시작이다. 상수도의 시원을 따지자면 이에 앞서 부산(1895년)과 덕수궁(1905년)에 상수도도 시설이 설치되었으나, 이들은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문제가 있어 근대수도시설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송현배수지가 위치한 송림산의 이름이 배수지가 있다해서 붙은 ‘수도국산’에 대한 것이다. 수도국산이 마치 인천에만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인천만의 일이 아니다. 배수지나 정수지가 설치된 언덕이나 산을 ‘수도산’이나 ‘수도국산’이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나 일본 및 대만에서도 비슷하다.
다음은 일반인이 알기 쉽지 않은 ‘배수지’와 ‘제수변실’의 의미이다. 모터펌프가 발달된 지금이야 원하는 곳으로 쉽게 물을 보낼 수 있지만, 과거에는 각 가정까지 물을 보내기 위해서는 물을 높은 곳에 두어 위치에너지를 만들어야만 했다. 근대기에는 취수펌프로 빨아 올린 물을 침전여과지에서 정수한 다음 송수펌프로 배수지에 밀어 올린다. 이렇게 밀어 올린 물은 배수지에 저장되어 수량을 조절하는 제수변(밸브)을 거쳐 가정에 보내지게 된다.
제수변은 배수관의 단수나 유량조절을 위해 설치하는 장치로,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 배수지 제수변실이다. 일반적으로 제수변실은 원통형으로 그 깊이가 상당히 깊은데 이는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는 송수관이 배수지 바닥부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현배수지의 깊이는 4.38m, 유효수심은 3.6m이었다.
통영 문화동배수지 제수변실 내부(사진 중앙의 철제장치가 제수변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배수지 제수변실의 형태는 콘크리트로조의 원통형과 육각형이 있고, 벽돌조는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원통형이나 육각형의 상부는 돔 지붕으로 처리하고 최상부에는 파총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제수변실의 외벽은 원통형이나 육각형의 밋밋함을 해결하기 위해 붙임기둥과 가로돌림띠로 입면을 나눴다. 또한 출입문 좌우에는 장식몰딩을 설치하고 상부에는 페디먼트 장식이나 활모양의 석재몰딩을 달아 고전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러한 외관에 비해 제수변실 내부는 단순 그 자체이다. 내부벽이나 천장에는 장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바닥에 마룻널을 깔아 마감하고 지하밸브와 연결된 쇠막대와 이를 좌우로 돌리기 위한 핸들이 전부다.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내부로 들어가서 달랑 핸들이 달린 쇠막대 밖에 없는 걸 확인하면 웃음이 난다.
또한 일본에 세워진 취수탑, 배수탑, 제수변실 등도 규모상의 차이는 있으나, 돔형지붕을 올린 원통형구조물인 경우가 많고 장식수법도 우리나라의 것들과 비슷하다. 이러한 형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에 위치한 히라세(平瀨)정수장은 송현배수지 제수변실과 형태가 비슷하다. 서울과 인천의 수도설계를 맡았던 나카지마(中島銳治, 1858-1925)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배수탑의 형태는 원통형 구조체에 돔형지붕을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에서는 근대수도시설을 공원이나 기념관으로 조성하는 사례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송현배수지를 근린공원으로 조성한 인천이 처음이다. 신중하지 못한 태도나 과도한 사례도 있지만, 근대건축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생활로 끌어들이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인천은 다른 지역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필자는 재능대학 인테리어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해반문화사랑회의 ‘인천정체성 찾기 운동’에 참여했고 문화재청이 지원한 ‘근대문화유산 지킴이’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랜 준비 끝에 ‘다시 쓰는 인천 근대건축’(간향미디어랩)이란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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