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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그라운동장’

by 형과니 2023. 5. 18.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그라운동장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2-22 13:41:06

 

인천 체육은 인천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웃터골 운동장(현 제물포고 자리)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1908425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인천부 관공립사립 각급학교가 춘계연합대운동회를 본항(本港) 송림동 후원(後園ㆍ장소 미상)에서 설행한다 하더라라는 기사를 보면, 학교 체육이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우성 시인·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

 

인천의 각급학교는 연합대운동회를 개최해 왔고, 1912년에는 인천 지역 유지들이 인천청년체육부를 창설하여 체육의 기틀을 다졌다. 매일신보는 1912618일자에 근일 인천의 유지, 신사들은 조선 체육의 유치함을 애석히 여긴 결과로 각기 약간의 금액을 내 인천청년체육부를 창설할 예정이더라.’고 보도하고 있다.

 

인천부는 192011월 응봉산의 분지 지역을 고르고, 수도와 간이화장실을 설치해 인천공설운동장이라 했으나 세간에서는 웃터골 운동장이라 불렀다.

 

그런데 1934년 인천부가 그 자리에 인천중학교를 세우기로 해 도리 없이 공설운동장을 도산정(桃山町·현 숭의동)으로 옮겼다. 당시 도산정은 인적이 드문 교외였다. 도산공원(현 광성고 자리), 옛 우각역(牛角驛·현 도원역) , 알렌 별장이 둘러 서있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인천부는 그 한가운데의 부지 15623평을 확보해 19347, 5백 석 규모의 정구장을 완성했고, 2년 뒤에는 야구장과 육상경기장, 사무실, 화장실 2개소를 준공했다. 야구장은 정면 1천 석, 좌우측 각 2천 석 등 5천 석(외야석 없음)이었고, 육상경기장은 400m 트랙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웃터골 운동장이 산기슭을 천연 스탠드로 사용한데 비하면, 도산정 공설운동장은 그런대로 콘크리트 스탠드를 갖춘 근대적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곳을 무대로 한 인천 스포츠는 웃터골의 전통을 이어받은 야구가 초강세였다.

 

일본 한큐(阪急)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유완식, 코시엥(甲子園) 대회에 출전했던 김선웅, 장영식, 연희전문의 선수 박현덕은 인천 야구의 전설을 만들어 간 인물들이었다. 특히 수차례나 전조선야구대회 제패와 일본 고시엥대회에 조선 대표로 출전했던 인상(仁商·현 인천고)의 활동은 인천 야구의 기반을 다진 화려한 역사로 기록된다.

 

그러나 일제는 패색이 짙어지자 야구를 적국의 스포츠라며 중지시키고, 식량을 증산한답시고 소화고녀(昭和高女·현 박문여고) 학생들을 동원해 야구장에 콩을 심는 등 기괴한 발악을 했다.

 

야구 시합이 재개된 것은 광복 후였다. 19459월 중순, 콩밭이 된 운동장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 미군 통역을 맡고 있었던 체육인 정용복이 나서서 미 공병대와 보수 작업을 했고, 운동장 최 씨가 마지막으로 백색 라인을 번듯하게 그어 야구장을 우리 품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이 운동장에 청춘을 불사르며 백구(白球)의 향연을 벌였던 인천 야구계의 원로들이 이끌었던 인천고와 동산고의 활약상은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체육사에도 길이 빛날 위업이었다. 인천고의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화랑대기, 전국4도시선발고교야구대회, 한국야구100주년기념 최우수 고교야구대회의 우승과 동산고의 청룡기, 화랑대기, 황금사자기, 대붕기, 봉황대기, 무등기 우승, 그리고 제물고교의 청룡기 준우승, 화랑대기 우승 등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 명승부들이었다.

 

육상경기장에 얽힌 추억들도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 주었던 짙푸른 포플러처럼 선연히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의 운동회, 응원가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던 고교 시절의 학교 대항 체육대회, 세 번이나 열었던 전국체전, 미군들이 벌였던 미식축구의 관전, 겨울철 운동장에 물을 뿌려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머플러를 날리며 청춘을 구가했던 낭만 등이 아련히 떠오른다.

 

인천 체육의 산실이었던 공설운동장이 도시 재개발에 따라 헐린다고 한다. 육상 경기장 자리에는 최신식 축구 전용구장이 생긴다니 그런 대로 위안이 되나 최근 열렸던 황금사자기 예선전, 전국대학춘계야구대회를 끝으로 그라운동장(60년대의 운동장 별칭)’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회자정리라 했던가! 비록 숭의종합운동장은 인천 체육사의 한 페이지로 남겠지만, 2014년 아시안게임을 앞에 두고 인천은 바야흐로 스포츠 도시로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최신식 국제 규격의 각종 스포츠 시설의 건설도 착착 진행중이다. 월드컵 개최 이후 이렇듯 인천 체육이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에 그 저력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결별에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아듀, 추억의 그라운동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