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담긴 詩 ⑪윤부현의 경인합승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1-20 00:29:42
인천이 담긴 詩 ⑪
먼 구름 속 오원의 악보로 꾀꼬리가 교향(交響)을 한다
- 윤부현의 경인합승
글·김학균 시인
결 고운 시어(詩語)로 사랑을 노래한 시인의 얼굴을 촌음간에도 기억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동시집 속에서는 사랑이 걸어나오고 시집속에서는 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기에 아무 걸림돌이 없다.
1968년 11월 신포동의 저녁거리는 늘상 그렇게 북적거리며 바쁘다. 더군다나 극장(동방, 키네마)근처는 노점상들로 길을 빠져나가기가 어렵다. 폭포수다방 내부는 밖의 사정과는 사뭇 다르게 조용, 적막하기까지 하다. 정면에 앉아 있는 40대 중반의 신사는 연신 책 속에 무언가 적어 넣기 분주하다. 이윽고 약속된 손설향 시인이 들어오자 그 신사는 “아우님, 어서 오게” 하며 호탕하게 문 쪽으로 웃음을 뿌렸다. 손 선생과 함께 서 있던 필자는 어정쩡하게 시선을 주고받았으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나 다름없었다.
“어, 학균아, 이리와” 설향 시인의 말에 합석하게 된 윤부현 시인과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 되었으며 4번째 발간된 책 「바닷가 게들」이란 동시집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다방을 나온 두 시인은 허름한 대폿집이 아닌 일식집 ‘미조리’로 옮겨 인천을 떠난 이후의 생활 이야기 그리고 문인, 문단의 이야기로 거나하게 얼굴을 덥히고 있었다.
항시 문인 선생, 선배의 말석에서 잔심부름 아니면 말의 추임새 뜨기에 바쁜 시절의 새끼문인, 아니 문학지망생인 나로선 큰 대접이 아닐 수 없었다. 불혹을 넘긴 윤시인은 깔끔한 용모로 사물을 바라보는 직관력이 날카롭다는 것을 그때 느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의 강을 더듬어보면 그 직관 속에 비창이 같이 존재하여 비애를 읽어 낼 수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제 생각하니 시인 윤부현은 꽃과 여인 그리고 나무를, 아름다움 이전에 고통과 인내와 슬픔을 가진 詩의 대상으로 풀지 않았나 생각된다. 곧 꽃이 죽음이요 여인이 슬픔의 원조이며 나무는 인생의 표상이라고.
인천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직(초등학교)에 입문, 외길을 걸어온 시인은 인천에서의 생활과 문단 활동이 다른 문인들에 비해 그리 길지 않아서 해적이가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시인은 ‘최병구’ ‘박송’과 더불어 동인활동을 하며 ‘홍윤기’ ‘김양수’ ‘랑승만’ 등과 교유, 시 창작에 몰두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혼자하는 자기와의 싸움이겠지만 더욱이 서울로 출근했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각고의 노력으로 지방문인으로 언감생심 5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에 「포풀러」로 당선, 문학입문 16년의 결실을 보았다. 27살 시인의 눈에 생생하게 각인된 6·25의 수난과 9·15 상륙작전을 보고 느꼈던 처절한 전쟁, 바로 그것이 시로 승화되어 6년 뒤 과목(果木)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생화」 「과수원」 「여인Ⅰ」 「여인Ⅱ」등으로 첫 시집 ‘꽃과 여인과 과목’ (1965년 11월 1일 간행 삼화인쇄, 모음사 발행)에 수록되어 오늘에 이른다. 후로 교직생활에서 건져 올린 소박과 따스한 정감을 다시 어린이에게 주고자 동시집을 펴냈다. 동시집 ‘숲속의 별들’속 「숲속학교」는 곡을 붙여 몸담고 있던 ‘경희대 병설 초등학교’의 교가로 불려지고 있다.
1968년 10월 ‘바닷가 게들’(배영사 간)이란 동시집을 상제 ‘소박하고 거칠면 거친 대로 정다움과 따스함이 넘치는 동시’ 라고 인원수 선생의 시평을 받은 바 있다. 83년 제2시집 ‘벗꽃만개’ (한국현대시 간)를 상제 후 86년 지병으로 타계한 훈류(시인의 호)는 꽃향기 버들바람에 실려 갔다. 경인합승은 우현의 「경인팔경」, 조병화의 「인생합승」과 같은 맥락에서 빚어낸 인천의 시다.
경인합승
산이
구름이
오색에 부서진다.
언덕에서 박수 갈채소리가 들렸다.
빠졌다 솟은 물매미가
물 위에서 미끄러졌다.
따라들었던 일체가
테이프로 바퀴 밑에서
자르라니 풀려나가다.
가로수 손들고 반기다가
멋쩍게 뒤돌아가서 차곡차곡
제자리를 마련한다
갑자기 얕아진
하늘의
먼 구름 속
오원의 악보로 꾀꼬리가
교향(交響)을 한다.
꽃과 여인과 나목/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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