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何雲의 작약도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1-30 11:25:05
인천이 담긴 詩③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 찬 소라의 귀’
- 韓何雲의 작약도
글·김학균 시인
함경도에서 태어나 서울을 떠돌고 전라도를 휘돌아 인천에 정착, 김포에 묻힌 한하운 시인.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온 육신으로 앓다가 1975년 2월 28일 생을 마감한 (사망 당시 간암) 한 시인의 인동초 같은 삶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나는 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을 느꼈다. 결정이 콩알같이 스물스물 몸의 이곳저곳에 나고, 검은 눈썹은 자고 나면 없어진다. 코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고 말은 코 먹은 소리다.’
한하운 시인의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에 나오는 초기의 나병 증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다. 이때 나이 17세의 한시인은 ‘길 위에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생의 문을 닫기까지 문둥이 나그네의 황토길, 전라도 길을 슬픈 구름처럼 흘렀으니 말이다.
이러한 방랑여정을 엮은 회상기가 2번째 시집 「보리피리」라고 서(序)를 장식했지만 슬프게 아름다운 선율은 아직도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서 울리고 있으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본다. 천형의 시인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시였던 것이다. 고통의 극한으로부터 자유에의 동경이 역설로 표현된 ‘파랑새’가 그러 하듯이. 인천은 단지 시인이 정착한 곳으로만 그냥 끝났을까하는 필자의 은근한 호기심이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쩐 일인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있으니 시(詩)를 통해 인천속으로 슬픈 구름처럼 한번 그렇게 흘러 보자.
<작 약 도>
작약 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
소녀들이 작약 꽃처럼 피여
갈매기 소리없는 서해에
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 찬 소라의 귀
소녀들은 흰 에이프런
귀여운 신부
밥짓기가 서투른 해
바다의 부엌은 온통 노랫소리
해미가에 흥겨우며
귀여운 신부와
한백년 이렁저렁 소꿉놀이
어느새
섬과
바다의
소녀들은 노을 활활타는 화산불
인천의 밤은 잠들고
소녀들의 눈은
어둠에 반짝이는 별, 별빛
배는 해각에 다가서는데
소녀들의 노래는 알로아에
선희랑 민자랑 해무속에 사라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알로아에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안녕
알로아에 또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시인의 시 중에 인천에 관한 시는 이 한 편뿐이다. 후대에 와서 ‘작약도’를 노래한 젊은 시인들은 많지만 해방공간의 암흑시기에 쓴 시는 없다(?). ‘종이집과 하늘’의 저자 ‘이인석’시인의 시 중 ‘하루를 살기엔’ 이란 시 속에서 잠시 나오기는 하지만 작약도 전체를 아우르는 시는 이 한편이 아닌가 싶다.
작약도는 숲이 울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땔감으로 수난을 겪고 1866년 ‘병인양요’와 5년 후 ‘신미양요’ 때 ‘보아제 섬’ ‘우두 아일랜드’라 각각 불려졌다. ‘
물치도’라는 우리 순수명칭이 부끄럽게도 일본 사람들이 ‘작약꽃’ 같다하여 부르게 된, 가깝고도 먼 ‘만석동 산3번지’의 섬. 시인 한하운은 소녀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별을 노래 했을까. 아마도 광복 즈음 화수동의 ‘이종문’ 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고아원이 설치 되었던 곳이라(후 6·25 동란에 없어졌다) 그리 노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동암역과 백운역 사이에 자리잡은 ‘신명보육원’은 전 재산을 북한 정권에 몰수 당한 50년도에 월남하여 ‘성계원’을 거쳐 나환자 자녀 복지시설로 시작해 오늘에 이른 시설이다. 55년의 역사를 지닌 그곳은 ‘한하운’의 사랑 바로 그것이다.
1919년 유복한 집안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함흥 보통학교, 이리농림학교, 일본 성계고등을 거쳐 북경대 농학과를 다닌 시인이 얼굴없는 시인으로 문단에 나와 천하에 던진 파장은 곧 한국의 나그네 시인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내 땅에 산 시인이 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피리를 불고 있다. 보리피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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