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의 인생합승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1-30 11:53:07
인천이 담긴 詩 ⑥
활짝 개인 하늘 아래
경인가로 팔십여리 잔잔한 기복
- 조병화의 인생합승
글·김학균 시인
1984년 봄쯤으로 기억되는 인하대학교 캠퍼스는 사람들의 물결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식과 과단위의 신고식(?)으로 또는 수강신청으로 그러 했었다. ‘삼익피아노’의
홍보부 사보담당 후배와 원고 청탁차 인하대학 부총장으로 근무하는 조병화 시인을
방문했었던 기억의 소견이다. 만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2번째 얼굴을 뵈었을때도
후덕한 모습은 여전했었다.
첫 번째 만남은 고 박영성 화백의 신세계백화점 화랑 개인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조병화 시인과의 원고청탁 업무 때는 좀 황당한(?) 일이 잊혀지질 않는다. 유명세가 따르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라서일까 선(先)지불이 없는 원고를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방문을 하고서 원고를 받을 수 있었지만 참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조병화 시인은 인천에서 출생하지도, 또한 인천에서 뿌리를 내린 사람도 아니다.
82세를 일기로 작고하기까지 햇수로 7년 정도 인천에서 근무한 것이 전부이다. 그
러나 시인의 인천생활은 본인의 문학활동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서는 정년을 맞은 곳으로 의미하는 바 크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인천문단사로 본다면
‘초창기 인천문단’의 형성과정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또는 ‘전후 개척기 시대의 문인’들 속
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라는 것이다.
인천 문인들 속에서 인천인이 아닌 조병화 시인을 왜 논해야 하는가는 누구보다도 인천
시편이 많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를 그 안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한다. 특히
처녀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산호장, 1949)에는 26편의 시중 Ⅱ부, 바다를 시적공간의
무대로 삼고 있는 작품들이 인천적이라는 것이다. ‘추억’ ‘나씨일가’ ‘기항지’ ‘다방 해엽’
‘영종도’ ‘풍경’ 등 항구도시 인천의 지역적 특성을 확연하게 표출시킨 바 있고 주변
도서지방을 포함 인천의 정경이 삶의 모습과 함께 형상화 되어있다는 점이다.
1시집 이후 25번째 시집 「안개로 가는길」(일지사, 1981년)에서는 부총장으로 근무 할
당시의 애환을 묘사하며 인생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철학을 낳게하며 표제작은 시적 성과
중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활 터전을 찾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던 인천의 지역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시는 「하루만의 위안」(제2시집, 산호장, 1950)에 수록된 ‘인천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 4시집 「인간고독」(산호장, 1954)에서 노래한 ‘팔랑버들’ ‘인천의 서야(序夜)’등이
또한 그러하고 「어머니」(제2시집, 중앙출판사, 1973)에 수록된 ‘서울 인천을 두고’와
같은 시는 인천이 담긴 시로서 대표적인 예로도 볼 수 있다.
시인의 7년 인천생활은 일본의 패망과 해방의 어수선한 상황 하에서 은사의 작고로 이어져
1974년 인천중학교(당시 6년제 였음) 물리교사로 부임하며 시작됐고 2년 후 서울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며 인천과는 잠시 끈을 놓았던 것이다.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그가 문인으로서 대한민국 문단사에
찬연한 족적을 남긴 이유는 좌절과 포기, 탈출과 위안으로 시를 쓰면서 생활은 곧 시를
의미했고, 쉬운 낭만의 언어로 넓은 독자층과 대화를 이어오는데서 현대시의 또 다른 맛을
준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81년 인하대학교 문리대학장으로 부임하며 부총장을
역임하기까지 5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천생활 7년은 인천을 위한 생활이었다.
‘다방 청탑에서’라는 부제의 시 「흑의와 소녀」, 「양주와 시인」에서는 ‘평론가 김양수에게’
라는 부제와 「관장의 회상」 ‘이경성 씨에게’ 라는 부제의 시를 보면 인천의 인물들을
소재로 한 글이 많았다 할 수 있으니 인천은 조병화 시인의 제 2의 고향이 틀림없다.
현재까지 아마도 전무후무한 다작, 다산의 책을 발간한 시인 이었을 것이다. 언어의
마술로 문학의 연금술사로서 문단의 별임엔 틀림없는 조병화 시인. 자연과학자로서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시인의 각오는 자기와의 피나는 싸움이었음이 분명하다.
‘시와 같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두 잊고 다시 시작을 하며 자신을 미지의 세계로 밀고
나갔던 거다’라고 시를 쓸 당시의 감회를 본다면 시적 모티브로서 크게 작용된 인천의
바다는 어느 문인이든 버리고 싶지 않은 유산이다.
인천을 위한 시 또는 시속의 인천에서 많이 나온 시보다도 세상에 얼굴 드러내지 않은
시중에서 인천이 담긴 시를 골라 이 늦은 봄 차창의 봄을 인생과 연결, 음미하여 보자.
인생합승
의무와 같이 살아 있는 나를
내가 안고
오인승 인생합승에 끼면
차창은 봄.
활짝 개인 하늘 아래
경인가로 팔십여리 잔잔한 기복
과수원 가지들이 손목을 흔들고
보리 밭 양지에 풀물이 든다.
붕붕
인생의 안개가 온 몸에 낀 채
늘어진 능선에 아지랑이가 핀다.
‘경인팔경’을 노래했던 우현 고유섭과 똑같은 감흥이었을까.
백리길 인천 서울의 가로에서 느끼는 문사들의 마음은 동상이몽일까.
아름답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내 고장 인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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