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담긴 詩 ⑩ 이 석인의 신포동 일기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9-02-19 15:29:55
인천이 담긴 詩 ⑩
쪼아도 쪼아도 허물지 못하는 시간의 벽
- 이석인의 ‘신포동 일기’
글·김학균 시인
‘신도 포기한 동네에서 아침을’이라고 표기한 시집을 발송해 준 후배 시인이 있었다.
아마 신포동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시집 속의 시편들을 보면 그곳에서 낳고 자라며 체험(?)한 편린들로
시 작업을 한, 가끔 절망과 수많은 희망을 담은 시집으로 현장적인 것이다.
허나 인천의 문인, 화가, 언론인 등 문화계 인사들 중에서 신포동을 굳이 피해가면 모를까
그냥 지나친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저자는 저자대로 생활의 몫을 신포동에 얹어놓고 생활한 입장에서 부르는 노래라 한다면
시인 묵객들은 신포동을 개항장 문화와 더불어 만남의 장소로 더 인식하는 곳이다.
그래서 신도 포기 못한 동네가 아닐까 바꾸어본다.
시인 이석인은 황해도 연백태생으로 해방과 더불어 인천 수도국산에 정착한 꼬방동네 시인으로
신포동과의 인연은 ‘인천신문’사에 근무하며 시작됐다.
1965년 11월 좀 이르다 싶은 첫눈이 함박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동인천역 개찰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단구(短軀)의 석인시인은 그날따라 더 작아 보였다.
만남의 이야기는 경동거리를 오르며 시작되어 인천신문사에서 끝을 냈다.
조한길 시인과 손설향 시인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다.
이 만남이 제대하자마자 언론사에 첫발을 디디게 하는 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 시절 문화부 기자의 역할이 광고도안이 주 업무였다면
우습긴 해도 홍익대학교 미대를 중퇴한 학력이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1943년 생으로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홍익대에 진학했지만
가난한 가정생활로 직업전선에 뛰어든 시인은
경기신문을 거쳐 76년 서울신문사 주간부(주간 스포츠)에 근무했다.
인천문학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제1시집 ‘산우가’를 펴냈고
1976년 12월 제2시집 ‘나무생각’(시문학사간)을 발간 했다.
경기 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시분과 회장을 두루 거치며
사무능력을 겸비한 성제(이석인 시인의 호)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동료였다.
인천문단의 동인지 역사를 꿰뚫어 볼 안목과 실질적인 활동을 주도해온 성제는
‘사라호’ ‘타원’을 거쳐 ‘삼우문학’ 동인을 필자와 더불어 탄생시킨 주역으로
문단사에 어느 누구 못지않은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는 시인이다.
1990년 ‘학산문학’의 창간주역(문협회장)으로 아쉽게 결실을 보지 못하고 물러나긴 했어도
시금석이 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업보를 본인에게 남긴 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로 미웁기 그지없다.
숱한 우여곡절을 안고 태어난 오늘의 ‘학산문학’을 지하에서 보고 있다면
성제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3시집 ‘고치속의 잠’(80년, 선민출판사) ‘치통’(85년, 시문학사 제4집) ‘
둥지를 떠나는 새’(89년, 친우 제5시집)를 발간, 시작(詩作) 생활의 부지런함을 내보인 시인으로
신춘문예나 문단추천을 거부하고 시작 능력으로 맞섰던 출중한 시인이었다.
“이석인의 시는 다 펼쳐놓은 병풍이다.
한 폭 정도 접힌 맛이 있을 때 시를 캐는 긴장이 있는 법인데 극히 개인적 감회로 잠적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시속에는 개인의 삶에 대한 회한으로 그치지 않을 또 다른 열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 시평이 생각난다. 그렇다 그의 시속에는 현실속의 비상이 있고 아프디 아픈 절규가 있다.
그의 아픔은 ‘둥지를 떠나는 새’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는 평자들의 말을 헤집어 보면 생활이 곧 시였고
시가 생활이었음을 잘 보여준 시인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인천문인협회장을 지냈으며, 1989년 인천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시인은
위암으로 54세에, 한창 문학의 열정이 영글 시기에 문우들을 버리고 갔다.
그가 가던 날,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 필자는 가끔 그를 꿈에서 본다.
신포동에서…, 신도 포기 못한 동네 주점가에서.
新浦洞 日記
한달에 한번쯤일까.
아니면 두어번 가고싶은 골목에 들려 酒店에 자리한다.
그래서 보고싶은 얼굴들을 만난다.
누가 오래서 온 얼굴이 아닌
그저 그렇게 들려서 만난 얼굴들이
해바라기처럼 모여 앉아 술잔을 비워댄다.
술잔을 비워대며 그저 그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주정처럼 나누다 헤어진다.
그때마다 내게 앙금처럼 내려 앉는 한가지 생각
마치 견고한 부리를 갖지 못한 새 한마리가
쪼아도 쪼아도 허물지 못하는
時間의 壁만 흔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천의문화 > 인천배경문학,예술,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극장 돌체 (1) | 2023.05.22 |
---|---|
인천역사문화총서 40~48호’ 출간 (0) | 2023.05.21 |
배다리를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 (0) | 2023.05.21 |
조병화의 인생합승 (0) | 2023.05.20 |
최병구의 월미도 (0) | 2023.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