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극장 돌체
인천의문화/인천문화,전시,공연
2009-03-25 22:11:44
골목 귀퉁이가 좋아 10년, 20년, 30년
공간 이름 걸고 묵묵히 걸어온 인생……돌체와 박상숙의 특별한 시간
경동의 후미진 골목을 바라보다.
남구 도호부청사 옆에 새롭게 둥지를 튼 작은극장 돌체
“돌체가 없어져도 울어줄 사람, 아쉬워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서러웠다.
그러다가 새 둥지를 틀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욕실로 들어가 밤새 울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로 ‘전설’이 된 소극장 돌체(대표 박상숙)가 올해로 30살을 맞았다.
1979년 인천 중구 경동 187번지의 얼음공장 창고를 개조해 탄생했으니 말이다.
이곳에서 극단 돌체가 만들어졌고 83년 마임이스트 최규호 씨와 부인 박상숙 씨가 극단을 인수해
명칭을 극단 마임, 소극장 돌체로 고친 후 인천 연극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돌체를 수식하게 된 30이라는 숫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느 한 공간이 오래 묵어서가 아니라
그곳을 중심으로 청춘을 바치고 많은 사람들이 희노애락을 맛봤기 때문이다.
부부는 좁고 축축한 지하 극장 다락방에서 신혼을 시작해 딸을 낳아 키웠다.
100여석의 40평 남짓 한 공간에서 ‘춤추는 어릿광대’, ‘겨울나그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
주옥같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지나온 30년이 꿈같다. 살아온 세월이 동화같다.”는 박 대표의 말이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공간의 이름을 걸고 묵묵히 걸어온 인생 30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돌체와 박상숙은
연인이자 한 몸일지 모르겠다.
70년대 중반 중구는 소극장들의 천국, 문화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부는 감히 문화예술의 중흥기라고 칭할 만큼. ‘잘 나갔다’는 인천의 중장년층들은 이와 연관된 향
수와 추억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정도다. 오래지 않아 사그라졌지만 빈약한 문화 인프라와 전문예술인,
관객층을 생각한다면 뜻밖의 현상일 수 있었다. 돌체로 보자면 중흥기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했다.
운영자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공간으로 더 무겁게 기억된다.
2009년 3월 오늘의 돌체는 남구 문학동에 머물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 최신 시설과 장비를 갖춘
140평의 지상 4층 공간으로 환생했던 것이다.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건물이 완성되기에 앞서
2006년 남구의 위탁 공모에서 극단 마임이 공연장 운영을 맡게 됐다.
대신 먼저 공간은 박 대표의 후배가 이끄는 극단 ‘씨아리’의 연습장으로 쓰이고 있다.
아무래도 돌체의 간판과 사람들 잃은 골목은 더욱 깊이 파이고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돌체의 박상숙 대표
박 대표와 운영진
박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추루하고 쇠락한 경동 골목이 좋았고 예술적 영감을 얻기에 더 없이 좋았다.
정말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건물이 워낙 낡은 데다 앞에 짓던 건물 때문에 돌체가 있던 건물이 붕괴될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 어쩔 수 없이 고향같던 그 곳, 생각 만해도 가슴이 뛰던 그 곳을 떠나왔다.
심혼의 더듬이가 그 시절의 추억을 건드릴 때면 아릿한 환영이 눈앞에 곧 펼쳐질 지경이다.”
당시 그곳에 부지구입비와 건축비로 20억원이면 충분히 공연장을 지을 수 있었지만
그 정도 돈이 있지도 않았고 구해질리 만무했다. 속을 끓이는 중에 극장의 형편과
박 대표를 잘 이해하는 한 국회의원이 팔을 걷고 나서면서 참담한과 절박함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여기에 남구청장이 돌체를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큰 힘을 실어주었다.
돌체의 힘과 소극장의 아름다움, 지역의 문화풍토를 기름지게 하겠다는 마음들이 한데 모인 결과였다.
30주년인 올해 그냥 넘어가기는 섭섭하고 몇 가지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30주년에 즈음한 1천원의 행복’
이라는 제목으로 그간 차곡차곡 모아온 돌체의 홍보와 공연 영상을 보여주려고 한다.
특히 돌체를 사랑하는 관객과 지역주민을 위해 기획공연을 이어갈 방침이다.
최근 공연을 마친 ‘추적자’에 이어 최규호의 ‘할아버지 제페토’와 창작물들을 계획하고 있다.
연말쯤에는 ‘오피니언 페스티벌’이라는 재미있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사회지도층이 오히려 문화 소외계층, 비소비층이라는 발상으로 그들의 문화향수를 돕겠다는 뜻이다.
행사를 통해 참여자들은 자기 홍보와 자기 표현을 위한 PPT를 ‘예술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
30주년 기념포럼도 염두에 두고 있다.
돌체의 30년 앞에서 박 대표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 30년을 풀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돌체를 피워 올리는 향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유롭게 사람이 모이고 볼거리, 즐길거리, 느낄거리를
펼쳐내는 돌체를 위해서. 박 대표는 전문극장으로서 작은 극장 돌체를 잘 가꾸고 사용한 후
다음 차례에 아낌없이 내어줄 참이다. 잃는 것, 고난의 길로 또 다시 들어서는 것이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지영일 편집위원 openme@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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