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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친일파 

by 형과니 2023. 5. 21.

친일파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28 00:46:28

 

친일파 

조우성의 미추홀

 

 

송병준(宋秉畯)이 일본의 어용상인 오쿠라를 만난 것은 1876년이었다. 강화도조약 체결을 위해 내한한 일본의 전권대사 구로다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정부가 파견한 접견사를 수행하러 갔다가 그를 상면했던 것이다.

 

그는 군납업자 오쿠라로부터 성냥, 석유, 담배 등 박래품을 수입해 팔면 한 밑천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부산에 상관(商館)을 차렸지만 부민들로부터 왜놈의 앞잡이라는 지탄과 함께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오군란 때는 집을 소각당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치기도 했다. 10여 차례의 위난 끝에 그는 일본의 보호를 받았고 훗날 친일파 정미칠적(丁未七賊)1인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두루 증언하고 있는 바와 같다.

 

그를 잊고 지내던 차에 국민들에게 그의 존재를 다시금 환기시켜준 것은 그의 후손들이었다. 수천억 원 한다는 부평구 미군부대 '캠프마켓' 일대의 땅 13만여 평을 반환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친일재산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에 대한 신뢰 이익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의 판단이나 시민적 이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반환 운동을 벌여온 이들의 노고도 새삼 돌이켜진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 엄정한 기록이나 근거도 없이 특정인을 '친일파'에 빗대는 작태는 비애스럽다. 더구나 '오늘에 친일했다'는 지경에서는 할 말조차 잃는다. 태반이 그럴 처지도, 사안도 아니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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