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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김연아 선수

by 형과니 2023. 5. 23.

김연아 선수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4-04 14:30:59

 

김연아 선수

조우성의 미추홀

 

우리나라 전통의 스케이트에 '대발'이란 것이 있다. 짚신 바닥에 대나무를 댄 것인데 겨울철에 도강할 때면 대발과 대발 막대라는 스틱을 사용했다. 대발 전에는 '위는 상 같고 아래는 배' 같은 설마(雪馬)가 있었다.

 

설마는 후에 썰매로 바뀌었지만 빙판 위를 자유자재로 지칠 수 있는 서구식 스케이트 '빙족희(氷足戱)'가 들어온 것은 1890년대 중반이었다. 경복궁 연못에서 가진 외국인들의 첫 시연을 고종 황제가 친히 관람했었다.

 

스케이트를 처음 타 본 사람은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 현동순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케이트를 구입했는데 사용법을 몰라 1905년 미국 선교사 질레트에게 물어 얼음을 치쳤다고 이길용 기자가 동아일보에 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빙상대회는 190821일 대동강에서 일본인끼리 연 빙상 운동회가 효시이다. 인천에서는 1924210일 제물포청년회(위원장 이길용)가 송림리 스케이트장에서 제1회 대회를 연 것이 처음이다.

 

최초의 동호인 모임인 '피규어스케잇구락부'가 결성된 것은 1924년 겨울 창경원에서였다. 피겨 종목이 채택된 런던 동계올림픽 이후 16년 뒤의 일이나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 때마다 시범 경기를 펼치며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의 피겨 기술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었다. 1938년 전만 선수권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김정자 이후 많은 선수가 배출됐으나 아직 세계무대는 꿈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김연아 선수가 대망의 세계선수권을 차지했다는 낭보다. WBC에 이은 김연아 선수의 쾌거는 정히 국가 흥성의 전조(前兆)이리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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