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해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4-04 14:29:26
인천과 해군
조우성의 미추홀
북한의 로켓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금주, 동해상에는 한·미·일 3국의 이지스 함들이 집결해 있는 양상이다. 대포동 2호를 추적하기 위한 배치인데, 그 중 미 7함대 소속 채피 함과 매케인 함의 함장이 한국인이어서 화제다.
한국계 최초로 이지스 함(채피)의 함장이 된 최희동 중령은 인천 출신으로 중3 때 이민을 가 일리노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 1990년 해군 소위에 임관한 후 미 해군에서 미사일 요격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보도다.
그 소식을 들으니 그 같은 인적 자원의 배출이 두루 역사에 뿌리를 대고 있는 듯싶다. 조선 정부가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조선수사해방학당(朝鮮水師海防學堂)을 지금의 인천 강화군 갑곶진에 세운 것이 1893년이었다.
또 근대식 해군의 창설을 꿈꾸었던 고종황제가 1903년에 들여온 최초의 군함 양무호(揚武號)의 모항이 바로 인천항이요, 양무호의 신순성(愼順晟) 함장이 인천에 정착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맥을 이어 월미도에 있던 제2함대 사령관을 거쳐 해군 총수인 참모총장에 오른 이가 인천고 출신의 안병태 제독이고, 그의 실제인 안병구 제독이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 함장에 취임했던 것은 다 예삿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해양국이요, 그 중심부인 인천은 예로부터 '도성의 인후(咽喉)'이자, '해방(海防)의 요로'였다. 인천이 "양서(兩西ㆍ황해도와 평안도)와 삼남(三南)을 호령하고 있는 형상"이라 했던 숙종 때 민치대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 인천과 해군의 인연을 기릴 사적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