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남북동 ‘조병수 가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3-25 23:03:37
흙·바람·소나무 냄새 숨쉬는 古屋
(10) 중구 남북동 ‘조병수 가옥’
우리 인천에 이런 고옥(古屋)이 남아 있다. 개항과 함께 인천에 멋대로 들어와 자리잡았던 일인들의 가옥이나 은행 같은 상관(商館)은 중구 중앙동 거리에 몇 채 남아 있어도, 백 년 넘는 순수 우리 옛집은 찾아보기 힘든데 참으로 기특하고 다행스럽게 ‘조병수 가옥’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집이 남게 된 것은 그곳이 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심이었다면 아마 벌써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멘트 덩치가 섰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집이 자리한 곳이 용유도 주산 오성산(五星山) 바로 아래였던 것이다. 지금은 영종도와 몸이 붙어 버렸으니 정확히 말하면 용유도가 아니다. 지번도 중구 남북동 868번지로 돼 있다.
이 집은 원래, 집 주인인 조병수(趙炳洙) 씨의 고조(高祖)가 세거지(世居地)인 서울 마포에서 옮겨와 1890년에 건립한 고옥이다. ‘ㄱ자’ 안채와 사랑채를 맞댄, ‘튼 ㅁ자형’으로 지붕은 한식 골마루기와를 얹은 합각지붕이다. 흔히 말하는 고래등같은 집은 아니지만 비교적 좋은 재목을 사용하고 정교한 가공으로 잘 지은 집이다.
누가 와도 마다하지 않는 푸근하고 텁텁한 집 주인 조씨나, 그 주인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 아늑하고 정겨운 이 집을 처음 찾았던 때가 거금 6년 전의 일이다. 그해 여름에 맡은 흙냄새, 풀냄새, 바람냄새, 나무냄새, 그리고 사람냄새를 잊을 수 없다. 그 감동으로 이렇게 졸시 한 편을 쓰기도 했다.
“소나무 속에 한옥 한 채가 들어앉아서 늙은 홍송(紅松) 냄새를 낸다. /
보꾹 서까래에 앉은 그을음이 옛날이야기처럼 먼데, /
나며 죽으며 나며 죽으며 하는 인간과 나방이와 모기와 노래기가 의젓하게 살고 있다. /
추녀가 슬쩍 들리게 기와를 얹은 품새가 사뿐해서 /
하늘 멀리 어질게 구름이 흘러간다. (후략)” -‘용유도 남북동 조병수 家屋’-
정말 그날은 소주와 열무김치와 돼지고기와 덕담과 소나무 냄새, 이런 것들로 하루를 보냈다. 집 뒤 등성이에는 개망초꽃이 많이 피어 있었고, 멀리 황해 물도 바라다보였다. 이 집 옆에서 서늘한 소리를 내던 대나무밭도 머릿속에 푸르게 남아 있다.
‘조병수 가옥’은 인천시가 1997년에 이 집을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붙인 공식 명칭이다. 이 집은 ‘전형적인 중부 해안지방의 중류 농촌 가옥의 특성’을 가진 문화재 자료 제16호이다. 306번 버스를 타고 가다 용유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산 밑 1㎞쯤 거리에 있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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