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륜사의 저녁노을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3-28 13:14:29
청량산 자락 ‘인천의 夕陽三寶’
흥륜사의 저녁노을
“누구나 새해 첫날은 동해 물 속에서 이글거리는 얼굴로 떠오르는 그 붉은 해를 맞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또 그 ‘말갛게 씻은 얼굴’을 맞으러 정동진이니 포항이니 강릉이니 하며 동해로 몰려든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창해(滄海) 위로 떠오르는 숫티의 해를 보지 못한다. 인천은 온갖 번뇌의 만상으로부터 하루를 벗고 참으로 고요하게, 그러면서 화려하게 돌아가는 태영, 지는 해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무릇 동해의 어느 포구, 어느 기암 산정의 일출에 차마 마음 울렁거리지 않을 수 있으랴. 허나 뜨는 해는 이내 백일(白日)을 향해 달음질쳐 매력을 잃거니와 지는 해는 비장한 듯 화려하게, 그러면서 이내 신비의 검은 장막 속에 무한한 꿈을 잉태하게 하니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니 서해 그 보랏빛 황혼에 그만 넋을 앗길 만한, 지는 해의 고장으로 대천을, 변산반도를, 그리고 고군산 군도의 한 작은 섬을 꼽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인천의 낙조만은 다르다. 특별하다. 아전인수(我田引水)일지 모르나
인천은 유별한 정취를 가졌기 때문이다. 정월이라면 단연 청량산 흥륜사에서 맞는 황혼이 으뜸이다. 흥륜사 절 마당에서 서역 만 리를 향해 떨어져 가는 한겨울 해, 그 짧고 붉은 황혼을 바라보며 문득 고개를 수그리는 일은 살아가면서 몇 번 느껴 보기 어려운 인간 본연의, 차라리 맑은 슬픔이다.”
5, 6년 전 어느 신문에 썼던 글의 앞부분이다. 박물관 뒤편으로 해서 정월 청량산에 올랐다가 흥륜사(興輪寺) 를 거쳐 하산하면서 문득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황해 물 위로 넘어가는 자주색 비로드의 노을을 보고 감회가 일어 쓴 글줄이다.
그리고 엊그제 다시 흥륜사 절 마당에서 또 그 황해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인천대교가 놓이고, 송도 신도시가 들어서고 해서 바다도 그때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또 계절 역시도 봄이어서 그 겨울날에 느꼈던 차가우면서 비애스럽던 황혼은 아니지만, 역시, 잠시 동안은 숨을 끊을 듯 아름다웠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몇 째 가는 황홀한 저녁노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인천에는 흥륜사 말고도 용유도 왕산해수욕장과 강화 적석사 낙조대의 기막힌 저녁노을이 있다.
그 글을 쓸 때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빌어 인천의 저녁노을을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이 셋을 ‘서향(西鄕) 인천의 석양삼보(夕陽三寶)’라고 칭하고 싶다.
학생 시절에는 길고 구부러진 황톳길을 따라 다달이 여기 ‘송도’ 청량산 자락을 밟고 선 작은 사찰 흥륜사, 아니 인명사(仁明寺)로 소풍을 왔었다.
그때도 간혹 늦은 귀가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어둑하게 솔가지에 걸리는 석양을 보았지만 오늘처럼 마음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 보지는 못했다.
길을 내려오면서 오늘의 송도는 이제 모조리 유흥지로 변해 버려 옛날의 그 고즈넉하고 아늑한 풍광은 잃었으나 노을은 여전히 붉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절 턱 밑까지 올라온 자동차들이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못마땅해도 노을은 변함없이 적막하게 타오르고 있다. 이 노을만은 내 고향 ‘인천의 소유’이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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