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계양산-인천 방위 요처 ‘부평의 鎭山’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4-21 03:00:22
인천 방위 요처 ‘부평의 鎭山’
(14)계양산
계양산(桂陽山)은 인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산이다. 아니, 인천 역사에서 중요한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부평지역의 역사를 상징하는 산이라고 하는 것이 뜻이 더 온전할 듯 싶다. 원인천 지역의 진산(鎭山)이 문학산이라면 부평지역은 계양산이 진산의 구실을 해왔다
계양산은 해발 395m로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앞서 말한대로 역사적으로 부평지역에 있어 유서가 깊은 산이다.
‘동국여지승람’ 부평도호부 고적(古跡)에 “부평의 계양산 고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석성으로서 주위가 1천937척이나 모두 퇴락하였다”는 구절이 보이고, 조선 고종 20년(1883) 계양산 능선을 따라 중심성(衆心城)을 축조했다는 사실 등을 볼 때, 계양산이 인천 방위의 요처였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이 밖에도 계양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오늘은 우리의 선대 인천향토사가이셨던 고 이훈익(李薰益) 선생의 계양산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난 글을 ‘인천지명고’에서 정리, 인용해 본다.
‘계양산은 일명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불렀다. 안남산의 별명은 고려시대 개성 이남의 군사요충지이며 국방 요새로 안남도도호부가 설치되었다 해서 붙은 것이라고 한다.
한강 서쪽의 주봉인 계양산은 인천 지역에서 제일 큰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계양산은 멀리서 떠내려 왔다고 한다.
고려시대 부평 부사(副使)로 온 이규보(李奎報)의 ‘망해지(望海誌)’에 계양산에 올라가 보면 사면이 모두 물이라고 했는데 서쪽은 서해바다, 동쪽은 한강이 산 주위를 빙 돌아 흐르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부평평야는 바닷물과 한강물이 드나들던 습지로 계양산만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같은 전설이 나왔음직하다.
계양산 건너편 강화도에 큰 산인 마니산(摩尼山)이 마주섰는데, 이 마니산을 형(兄) 산, 계양산을 아우 산이라 불렀다. 까닭인즉 마니산의 반쪽이 떠내려 와서 계양산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양산 위에 구름이 뜨면 인근 사람들은 반드시 비가 내리고 해서풍이 몰아치면 비가 갠다고 전한다.
계양산에는 절이 12곳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서쪽에는 만일사(萬日寺), 북쪽에는 명일사(明日寺), 동쪽에는 봉일사(奉日寺)가 유명했다.
또 계양산에는 불여우가 살았다고 한다. 불여우 떼는 사람을 해치는 일은 없는데,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놀렸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 앞뒤로 따라오면서 깽깽 소리를 지르며 시비를 걸거나, 머리 위를 넘으면서 장난을 쳤다고 한다.
계양산에는 옛날부터 계수목(桂樹木)과 회양목(繪陽木)이 자생했다는 것이다. 그 중 특히 회양목은 관상수로 유명했다.
그밖에 계양산에는 유명한 부싯돌이 채석되었다. 부싯돌은 가정의 필수용품의 하나였다. 부평 사람들은 농한기가 되면 계양산 부싯돌을 다듬어 서울 등지에 팔러 다니기도 했다. 부평 부싯돌이 우리나라 화약 연구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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