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 운동과 정재홍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26 00:30:58
"국채 상환하여 국권 회복" 십시일반 모금
광복 60년 인천의 항일운동사-6.국채보상 운동과 정재홍
6.국채보상 운동과 정재홍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예나 지금이나 국민이 일어나긴 마찬가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나라가 진 빚을 갚으려고 자발적으로 금모으기에 나선 것처럼, 100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1907년 2월 대구에 있던 대동광문회를 시작으로 불붙은 국채보상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번졌다. 일본에 진 나랏빚은 모두 1천300만원. 4월부터 5월까지 한달간 전국에서 4만명 230만원이 모였다. 그러나 송병준을 위시한 일진회의 탄압으로 좌절하고 만다. 인천과 강화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이 일었다. 만세보에는 연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성회 광고가 실렸다.
1907년 1월22일자 만세보는 대한자강회 인천지회가 인천항에 설치된다는 소식을 전한다.
대한자강회는 국민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진다는 취지 아래 1906년 윤효정, 장지연, 나수연, 김상범, 임병항, 등이 1905년 5월 이준이 조직한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를 확대 개편하여 발족했다.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연설회를 개최하고 사범학교 설립, 의무교육 실시 등을 정부에 건의안을 제출했다. 또 ‘대한자강회월보’를 발행해 ‘식산흥업’(殖産興業)의 필요성과 국가재원 증진책, 황무지개척, 일제 황무지개척의 의도, 임업의 필요성, 토지개량의 필요성, 종자개량 등에 대한 계몽운동도 전개했다.
대한자강회 인천지회는 정재홍이 주도해 만든 것. 정재홍은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천항 유지들과 잦은 접촉을 통해(황성신문 1906년 12월19일) 지회설립을 준비해왔다. 윤효정을 불러 1907년 1월 대중연설회를 열어 분위기를 돋우게 된다. 인천지회 회원은 인천감리와 해관 근무자인 전·현직 관료나 실업가 등이었다.
그해 4월 들어 국채보상운동이 인천에서도 일어난다. 4월14일자 만세보는 대한운수회사 인천지점 단연동맹인 김명화씨 등 36인이 국채를 보상하려고 두 차례에 걸쳐 의연금 7원20전을 기성회로 송부했다는 광고를 싣고, “이들의 애국성이 거의 격렬이라더라”고 전했다.
이 즈음 대한자강회 인천지회는 통상총회(정기총회)를 열어 국채보상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교육운동 등을 열심히 전개할 것을 당부했다.(1907년 4월30일자 만세보) 이날 총회에는 윤효정 등 대한자강회 중앙간부들이 참석했다.
이러 노력 덕에 인천항에 있던 신상회사와 미상회사를 비롯한 기업가들이 경쟁적으로 의연금 모집에 동참했다. 의연금은 국채보상운동과 학교설립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2월21일자에 국채보상운동취지서를 싣는다. “2천만 국민이 3개월간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이 매월 20전씩 3개월만 모으면 1천300만원의 국채를 무난히 상환할 수 있다.”
정재홍도 신상회사 임원들을 중심으로 담배를 끊는 모임인 단연동맹회(斷煙同盟會)를 조직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선다. 단연운동은 임원에서 사환으로, 다시 인천항 노동자로 번져갔다.(황성신문 1907년 2월21일 잡보 단연결심)
1907년 4월21일자 만세보는 인천지역의 국채보상 운동 분위기를 잘 나타낸 기사가 실린다. “강화 볼음도 석포동에 사는 김동?씨가 담박한(어려운) 생애로 호구가 무가(여유가 없는)한데 금번 국채보상에 대하야 2원을 기성회로 수납하였다더라”
국채보상운동은 이러한 배경 속에 인천항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된다. 연일 만세보를 비롯한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언론기관이 적극 국채보상운동을 보도하고 지원했다. 언론캠페인으로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광고로 실었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배설·양기탁의 수난 사건을 일으키면서 중단된다. 송병준 등이 지휘하던 매국단체인 일진회가 극력 탄압하고, 통감부는 국채보상기성회의 간사인 양기탁이 보상금을 횡령했다고 누명을 씌워 구속했다. /김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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