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작약도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6-15 16:31:49
병인·신미양요 근대사 격랑 중심에
(21) 작약도
지난호에 이어 섬 관련해서 이번에는 작약도 이야기를 한다. 섬이라고는 해도 작약도는 크기도 작고 워낙 뭍과 지척이어서 백령도나 연평도 같은 섬들이 주는 그런 느낌은 없다. 옛날에는 근해 유원지로 경인간에 널리 알려져 오가는 행락객들로 제법 붐볐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사정에 얽혀 고요하기만 하다.
월미도 축대에서 영종도를 바라보며 조금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그마하면서 머리에 숱이 많은 작은 섬이 작약도인데 원래 우리 이름은 물치(勿淄) 혹은 무치(舞雉)였다 한다. 그러나 ‘어을미’로 불리던 섬에 ‘월미도’라는 멋들어진 한자 표기를 갖다 붙인 것처럼 이 섬 역시 ‘강화해협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거센 물길에 치받치는 섬’이란 뜻의 우리 말 ‘물치’를 이렇게 의역해 한자를 갖다 붙인 것이다. 작약도라는 이름은 일제가 붙인 것이다.
아무튼 작약도는 염하(鹽河)로부터 내려오는 물살 만큼이나 거센 역사의 풍상을 겪은 한국 근대사의 한 증인이라 할 수 있다. 한가롭기 그지없던 이 섬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낯선 서양 지명으로 인구에 오르내리게 된 연유는 바로 한국 근대사의 격랑, 즉 조선말 두 번에 걸쳐 발발한 양요(洋擾)에 의해서였다. 물론 후에 운양호사건도 일어난다.
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가 원인이 된 병인양요는 1866년에 발발한다. 이 때 조선 원정에 나선 불란서 극동함대는 로즈 제독의 지휘 아래 기함 프리모게(Primauge)호, 포함 타르디프(Tardif)호 등을 작약도 앞바다에 정박시키고 강화 정벌에 나선다. 이들은 해도를 작성하면서 월미도를 저들 지휘관 로즈의 이름을 따 ‘로즈섬’이라고 명명하고 작약도는 함선의 이름을 붙여 ‘보아제섬’으로 기재해 한때 서방 세계에 이 두 섬의 명칭이 그대로 알려졌었다.
미국 아시아함대에 의한 신미양요는 그 5년 뒤인 1871년에 일어난다. 이 양요는 5년 전 대동강에서 발생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 때문에 촉발됐는데 로저스 제독은 선원 전체가 몰살당한 셔먼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차제에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한다는 의도로 5척의 함선을 작약도와 율도 사이에 정박시킨다. 그리고는 불란서 함대와 마찬가지로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가 광성보를 공략하고 초지진을 점령한다. 이 때 미국 함대는 숲이 울창한 작약도에 ‘우디 아일랜드’(Woody Island)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어 1875년에 일어난 것이 운양호사건이다. 일본은 22년 전인 1853년 미국 해군의 함포에 의해 강제 개항한 저들의 과거를 고스란히 조선에 되돌려 갚은 것이다. 운양호는 월미도와 작약도 사이 해상에 9월19일부터 이틀 간 정박했다가 역시 강화 초지진으로 올라감으로써 불·미 해군의 전철을 밟는다. 작약도가 이처럼 역사 현장이 됐던 것은 그 지정학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런 작약도가 근래 매우 암울한 지경에 놓여 있다. 2005년 경매 처분에 따른 소유주 교체의 곡절을 겪은 뒤 새 주체에 의한 관광지 개발 구상이 있었으나 개발 제약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아직 원활하게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채 답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인천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 유원지가 이렇게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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