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여배우 도금봉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6-15 16:32:50
인천이 낳은 ‘‘세기의 요우(妖優)"
(22) 여배우 도금봉
지난 6일자 서울의 한 일간지 구석에 노 여배우의 짤막한 부음 기사가 실렸다. ‘원로 배우 도금봉씨 별세’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는 우리 인천 출신 여배우 도금봉(都琴峰)씨에 관한 것이었다.
“1950~60년대 은막을 풍미한 여배우 도금봉(79·본명 정옥순)씨가 지난 3일 노환으로 서울 광진구 구의동 한 복지시설에서 타계했다. 1930년 인천에서 태어난 도씨는 악극단 배우로 활동하다 1957년 조긍하 감독의 영화 ‘황진이’로 은막에 데뷔했다.”
기사는 이어 1963년 영화 ‘새댁’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금봉이 1997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까지 평생 5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사실과 함께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는, 참으로 쓸쓸하고 적막한 끝 문장을 적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2007년 6월21일 필자는 지역의 모 일간신문에 바로 ‘여배우 도금봉’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거의 만 2년 만에 안타까운 부음을 들은 것이다. 또 다른 인천 출신 원로 여배우 황정순에 이어 연재한 그 때 필자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 인천이 낳은 또 한 명의 유명 여배우 도금봉을 기억하는 사람도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이 쉰은 넘은 사람이라야 겨우 겨우 그녀가 배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역 연예사(演藝史)는 물론이거니와 ‘인천시사’에조차도 한 줄의 언급이 없으니 그녀가 인천 태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 따지자면 더욱 그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1959년 그 당시 한 지역신문이 주최한 ‘제1회 인천 출신 영화인 귀향예술제’에 향토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초청된 지일화(池一花·도금봉의 악극단 시절 예명)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 무렵 연예인 도금봉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던 듯하다. ‘타고난 미모와 늘씬한 자태’에 이른바 ‘세기의 요우(妖優)’라는 수식어가 증명하듯이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악녀의 이미지’로 ‘정숙한 이미지의 황정순’과는 정반대 캐릭터로써 회자됐다. 영화배우로서는 신인이었지만 데뷔와 동시에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최고의 인천 스타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금봉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영화 활동 기록 정도 뿐 신상에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다. 출생이나 가족 관계, 출신 학교 같은 개인 기록, 1959년 귀향예술제 이후 인천 관련 활동, 그리고 끝내 인천을 등지는 이유 등…. 그래서 필자는 더 늦기 전에 “인천 쪽에서 얼른 나서서 직접 구술이라도 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그리고는 2년이 흘러 마침내 엊그제 안타까운 부음을 서울의 신문 기사로 전해들은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혹 한 예인(藝人)이 쓸쓸히 고향을 등지고 외지에서 살다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없기를 비는 마음으로 2년 전, “인천 출생 그 하나 겨우 확인할 수 있는 배우 도금봉. 그것만도 우리로서는 의미가 큰데 이 만년의 여배우에게 우리는, 인천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가 영영 고향을 잊지 않고 우리도 그녀를 절대 잊지 않을 그런 일을 해야만 할 터인데….“라고 썼던 것이다. 오늘 인천의 지역 신문은 그녀에 대한 기사 한 줄조차 알아내 싣지를 못하고 있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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