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끼리의 상호견제는 바람직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6-23 21:55:19
외부 비평자의 시각/8월호 월간조선을 읽고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 교수, 언론학
언론끼리의 상호견제는 바람직
제목의 정확성에 문제 있다.
좋은 기사라도 읽혀야 영향력 생긴다
잡지를 성공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첫째 조건은 뭐니뭐니 해도 우선 좋은 잡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든 잡지라 해도 독자들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잡지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훌륭한 편집)과 효과적인 경영이다.
미국에서도 20세기에 창간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대(大) 잡지로 성장한 타임r과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창업자 자신들이 훌륭한 경영인이었거나 그들의 주변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경영인들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이라 해서 다를 바가 없다.
경영의 요체는 판촉활동이다.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가를 알리는 일은 좋은 의미에서 일종의 판촉활동인 동시에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일환이기도 하다. 우선 훌륭한 기사가 실린 잡지를 만들어야 하고 다음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도록 함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잡지의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는 것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훌륭한 판촉활동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8월호 잡지가 발행되는 바로 그 시점에 잡지에 실린 내용이 신문에 게재되어 독자들이 궁금증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7월18일자 중앙일보는 월간중앙 8월호에 실린 레만호 계획과 정호용의 한이라는 기사를 상당한 지면을 배정하여 요약?게재 했다.
이튿날인 19일에는 조선일보가 후평리 지하음은 사람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일본 음향전문가 스즈키 마쓰미(鈴木松美)씨의 지하기계음을 분석한 내용을 게재했다. 월간 조선 8월호에 실린 추적-김포 지하 사람 목소리의 내용을 뒷받침한 기사였다.
이 두 신문은 각기 자사가 발행하는 월간지의 기사를 받아 실은 것인데 잡지 기사를 신문이나 방송이 인용 보도한다는 것은 언론계의 바람직한 관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간지를 배경으로 발행하지 않는 독립된 잡지사는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사와 잡지의 제호를 선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간지가 발행하는 잡지는 일간지의 후광을 입는 외에 직접적인 선전 효과를 최대한으로 발휘 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가 그렇지 못한 것인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신문사 발행의 잡지는 독립된 잡지사 발행의 잡지에 비해 혜택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책임성과 신뢰성을 더욱 깊이 자각해야 하며 센세이셔널리즘을 탈피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우연히도 신문이 요약 보도한 이 두 잡지의 기사는 각기 다른 물의를 일으켰다. 월간중앙은 재판 발매가 금지가 되었다는 소식이었고, 월간조선의 기사에 대해서는 7월19일자 서울신문과 8월호 말지, 그리고 7월30일자 한겨레신문이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다루었다.
월간조선 기사의 경우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이 어느 언론학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민감한 사회적 쟁점을 두고 건전한 비판과 대화가 오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잡지와 잡지, 신문과 잡지, 방송과 잡지가 한 주제에 관해 다른 시각에서 매체의 특성에 맞게 다루면서 상호 비판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소득이었다고 생각하다.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은 제목
박정희는 김일성을 농락했다는 7월호 기사의 속편에 해당한다. 5?16직후에 남북한 비밀정치회담이 있었다는 소련측 인사의 말을 근거로 우리측 관련자들을 만나 이에 관한 진상을 가능한 대로 소상히 밝혔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기사로 판단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일성을 농락했다는 제목은 기사의 내용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고 최초의 남북회담의 의미를 잘못 전달할 가능성까지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회담 대표였던 강성국씨가 자신들이 첩보부대의 공작원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우리는 조국과 민족에 평화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에 다녀왔다』고 말했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이 기사는 『정치회담이 열렸다는 사실과 그 내용은 30년만에 밝혀졌다. 그러나 회담을 제기한 목적과 의도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구절은 『과연 남한은 회담을 핑계로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농락한 것일까』라 하여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의문사로 끝을 맺었다.
이와같이 기사 내용에는 정치적 목적과 정보획득 차원의 동기에 관해 복잡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제목에서는 농락으로 단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자를 오도할 수 있으며 남북한 접촉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격하시키는 것의 의미를 담는 것이다.
원래 제한된 단어로 전체의 기사내용을 반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편집자는 기사의 내용을 정확히 요약하여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제목이 무엇일까를 찾다가 이같은 제목을 뽑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잡지의 기능은 무엇인가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시모카와 마사하루씨는 하반신 약한 일본, 연습부족의 한국에서 『신문의 기사 제목에는 일종의 마력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사건의 진상과는 별도로 스스로의 힘을 발휘한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바로 그 글이 실린 월간조선의 농락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제목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두에 실린 두 사람의 외국 거주 한국 학자들의 시각인 낙관적 한국론은 바로 이어서 실린 진단?한국경제의 맥박은 지금???과 함께 경제적 시각에서 본 우리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나라 안과 바깥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상기 교수는(남 일리노이대)의 한국의 자랑하는 한국인 자신이다는 후련한 필치로 우리가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국의 자랑거리는 문화유적도 자연의 풍치도 아니고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 자신들이라고 속시원하게 갈파한다. 이두원 교수(미국 UCSD대학원)도 장기적 비관론과 단기적 낙관론이 가장 위험하다면서 그동안의 경제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자고 말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 경제의 장래가 결코 비관적은 아니며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의 미래는 실제로 낙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간조선 기자가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구, 구미, 울산, 창원지역을 둘러 본 경제르포에 의하면 지역 경제는 크게 멍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는 지역 경제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희뿌옇다고 표현한다. 한국 경제의 현상과 장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급격히 떨어진 설비 투자, 줄어드는 제조업종사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환경문제 등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기업은 원가절감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소비자도 그동안 지탄받던 과소비 풍조에서 서서히 벗어나 건전한 소비 패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경제는 아직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낙관론과 신중론, 그리고 비관론 가운데 어느쪽이 맞는 것인지는 가려내기 어렵다. 그러나 침체된 사회 분위기,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떨치고 일어나 우리가 이룩해 온 소중한 결과들을 토대로 밝은 앞날을 향해서 달려야 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잡지가 문제점을 파헤치고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해야 할 일이지만 독자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광고에 파묻힌 사진 화보
사진 화보는 기사에 못지 않는 호소력과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 8월호에 실린 화보는 고발성 내용(대책 없는 항공기 소음, 길바닥을 덮는 껌공해)가 있는가 하면, 밝은 이야기(금속 마이크로 필터 국내 최초 개발)도 있고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내용(헌옷 재활용의 현장), 세태풍속도(날씬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그리고 인물 또는 지역 소개, 명찰순례 등 다양하다.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적지 않은 분량이고 내용도 좋은 것이 많다. 그런데 이들 사진 화보가 효과를 제대로 발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고 속에 화보가 끼어 있어 언론 보기에 화보와 광고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광고에 파묻혀 빚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보는 잡지가 아니라 읽는 잡지다. 그러나 기사와 화보는 각기 다른 기능과 장점을 지닌다. 문제성이 있거나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화보는 잡지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런데 화보가 광고에 눌려 독자들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거나 광고의 그늘에 가리고 만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잡지론에서는 광고가 기사와 서로 다투는 경쟁관계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를 내적 경쟁(internal competition)이라 부르는데 판형이 크고 화려한 광고를 많이 넣는 오락잡지와 여성지에 흔히 해당되는 이론이다. 그런데 월간조선에도 이와 같은 내적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잡지의 수입에는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광고가 무시할 수 없는 수입원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사진 화보는 반드시 광고에 우선하는 대접을 받도록 신경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병언 세모사건의 축소 지향은 신문이 저지른 오류를 바로잡아 보려한 기사로 볼 수 있겠다.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으로 세인의 관심이 높았던 세모와 오대양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미 여러 신문과 방송이 많은 분량의 기사를 내보낸 이 사건의 내막을 시각적으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재판 결과까지를 종합하여 다시 살펴본 것이다.
기사는 묻고 있다. 검찰과 재판부는 과연 예단과 선입견 없이 사건을 다루었는가. 그리고 기자는 사실 확인을 제대로 했는가.
신문의 오류와 법원의 여론재판
이 기사가 복잡한 인과관계와 은밀한 금전수수 그리고 폐쇄적인 종교집단의 내막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헤쳤느냐 하는 것을 여기서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세모-오대양사건이 과장되고 왜곡된 것은 언론이 사실확인을 소홀히 하면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에서 바라보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흐름이다.
법원의 판결도 상급심으로 갈수록 사건이 단순화되고 축소되었으며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여론재판의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언론 보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리고 여론재판에 휘말린 사람들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느끼게 한다.
이와는 대조적인 내용이 일본 언론은 김일성 사망기사를 써 놓았다?이다. 일본의 신문은 김일성의 사망에 대비한 기사를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해 놓았으며 1년에 한두차례 그 인물과 관련된 특별한 날에 기사를 최신 정보에 따라 계속 고쳐나가며 담당 기자가 바뀔 경우 즉시 인수인계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모-오대양사건 기사와 일본 언론의 김일성 사망 기사를 평면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일본 언론이라고 해서 한국 신문에 비해 오보도 없고 완벽하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의 언론이 보여주는 무책임성과 과장보도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세모-오대양사건은 우리나라의 언론이 반성을 겸해 재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시모카아 마사하루씨가 쓴 하반신 약한 일본, 연습부족의 한국의 한 구절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의 글 가운데는 한국의 언론이 인권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부분이 있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며 언론의 보도태도와 관련하여 새겨들을 부분이 있는 기사라 생각한다.
저자 | 정진석
ㆍ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
ㆍ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석사
ㆍ런던대학교 정경대학 박사
ㆍ한국기자협회 편집실장, 관훈클럽 사무국장
ㆍ언론중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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