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늬우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7-05 21:22:07
조우성의 미추홀
대한늬우스
일제 강점기 때 애관(愛館)을 비롯한 인천의 여러 극장에서는 극영화 외에 '뉴스 영화'라는 것을 빠짐없이 상영했다고 한다. 지금에 들으면 낯설지만 1960년대의 대한늬우스나 리버티 뉴스와 다를 게 없었다고 전한다.
태평양전쟁 내내 일제가 강요했던 그 '뉴스 영화'는 대개 "황군! 영미 귀축을 물리치다!" 같은 프로파간다였는데 독일은 물론 미국, 영국도 정도의 차는 있었어도 '뉴스 영화'를 심리전 차원에서 활용했던 게 사실이다.
6·25전쟁 직후 전국 각지의 극장에서 의무적으로 상영했던 대한늬우스나 리버티 뉴스도 프로파간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영화가 지닌 본질적 성격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한 예였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가 영화 산업을 국가 통제 아래 두거나 직접 운영했던 것은 그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었다. 영화의 강력한 대중 선동적 혹은 선전적 기능을 가장 극대화시켜 정권을 장악했던 것은 나치였다.
지난 세월 한국의 진보 세력들이 '영상'에 주목하면서 각 시도에 법적 근거도 희박한 무슨 위원회를 설치했고, 일부는 자신들의 이념을 '극영화'로 녹여내 크게 히트 친 것은 영상 프로파간다의 승리였다고 보인다.
최근 정부가 '대한늬우스'를 부활시켰다고 해서 공방 중이다. 영상 미디어들에 협공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정부의 궁여지책으로 보이나 호랑이 담배 먹던 구식 프로파간다가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구촌 하늘을 수많은 채널이 뒤덮고 있는 세상 아닌가. 보수가 비로소 눈을 떴다는 수준이 겨우 그 모양이었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