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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아펜젤러의 숙소

by 형과니 2023. 5. 29.

아펜젤러의 숙소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7-05 22:11:32

 

아펜젤러의 숙소

우리나라의 첫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제물포에 두번 상륙한다. 첫 번은 1885년 4월5일 부활절 오후요, 두 번째는 같은해 6월16일(혹 20일)이다. 그것은 두달 전 입국하고서도 갑신정변 후 사회적 불안정으로 부녀자의 상경이 허락되지 않아 4월13일 일본으로 철수했다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에 거처가 마련되는 동안 한 달여 머물다 7월19일 비로소 상경한다.

그때 그는 인천 어디에 머물고 있었을까. 본지에 연재 중인 3일자 김윤식 시인의 ‘인천 재발견’에 그의 상륙 첫날이 다이부츠 호텔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랬었다. 그의 한국 도착보고에 따르면 일본인 호텔에 들었는데 방이 넓고 편안했으며 약간 싸늘해도 잠을 잘 잘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미국 호텔만큼은 못했지만 기선에서보다는 한결 좋았으며 음식도 잘 요리되어 입에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입국 때는 어떠했을까. 그는 항구의 “집 비슷한 곳”에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게에서 구입한 포장지로 만든 집이었기 때문에 다만 집이라는 구실을 해줄 뿐이었다는 것이다. 부연 설명으로 보아 오늘날 재활용 상품박스로 얽어 만든 가건물이 아니었던지. 마침 장마 때라 비가 샜다고 한다.

마침내 서울에 도착한 아펜젤러의 임시 숙소는 알렌의 집이었다. 알렌은 아펜젤러의 거처를 두고 걱정을 했던 듯하다. 그의 1885년 4월6일자 일기에는 “지금 제물포에는 병든 아내를 대동하고 내한한 감리교인 한 사람이 있다. 그곳 제물포에는 그들을 수용할 만한 집이 없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아펜젤러가 1902년 해난사고로 순교했을 때는 이렇게 회고한다.

“아펜젤러는 남쪽으로 가는 기선을 타기 전날 밤을 제물포 우리 별장에서 함께 보냈다. 그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도 그들 부부는 우리집 손님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서 마지막 머무른 곳이 우리집이었다는 것은 신기한 우연의 일치였다.”

그로부터 14년 후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한 곳뿐이던 서구식 호텔마저 문을 닫았다. 외국인이 묵을 변변한 곳조차 없던 개항지에 한 곳 호텔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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