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학 강좌> 네번째 이야기 < 고려가 강화에 온 까닭은>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7-13 14:04:59
빠른 물살·갯벌…39년간 몽골에 맞서
화도진도서관과 함께하는 인천학 강좌> 네번째 이야기 < 고려가 강화에 온 까닭은
강화도를 흔히 보장지지(保障之地) 또는 보장지처(保障之處)라고 부른다. 나라와 왕실의 운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고종 19년(1232년) 고려는 몽골의 잦은 공격을 피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빠른 물살과 갯벌로 배를 댈 수 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지닌 강화도에서 고려는 39년 동안 몽골군에 맞설 수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려가 다른 지역도 아닌, 강화도로 간 이유를 몽골군이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다.
수십년 전 국사학계 한 원로가 내륙생활에 익숙한 몽골군이 수전에 약해 강화도를 건너지 못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이젠 거의 사실처럼 굳혀졌다.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점령했고 압록강 대동강을 건너와 고려를 침략한 몽골. 일본 현해탄을 두 번이나 건넌 몽골이 김포~강화도의 780m 물길을 건너지 못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경준 덕진고 교감은 “몽골군은 강화도를 침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화도의 지세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 동안 고려가 강화도에 있었던 것에 비해 고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려궁지는 원종 11년(1270) 몽골군에 의해 대부분 파괴됐고 병인양요(1866)때 거의 불타버렸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집무하던 동헌(명위헌)과 이방청, 근래에 복원된 외규장각만이 남아있다. 강화부종각 안에 있던 강화동종은 종에 균열이 생겨 강화역사관으로 옮겼고 지금 것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선원사지 또한 현재 그 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문화재청 역시 다른 곳이 선원사 터라고 강조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에 의해 몇몇 유적이 발굴됐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고고학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옛 선원사가 선원면 선행리 충렬사 인근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 단군이 강화도에 왔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의 주활동무대가 북한인데다 관련 유적도 대부분 북한에 있다. 남한 강화도의 기록은 ‘여지도서 강도부지’와 ‘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사인 ‘고려사’에서 굳이 단군을, 더구나 강화도에 출현시킨 의도가 무엇일까?
김 교감은 강화도를 성스러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고종의 강화도 천도 후 백성들은 몽골의 잦은 침입에 원망이 쌓였고 최씨 무신정권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분노가 날로 높아졌다. 고려는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을 희석시키고 강화도 천도의 당위성을 백성들이 받아들이게 할 특단의 대책으로 단군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장일 뿐, 확실하지 않다. 결국 고려의 역사는 유물과 자료가 아닌, 몇몇 학자들의 학설로 짜여 있는 것이다.
김 교감은 “소수 학자들의 문헌으로 강화도의 고려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며 “현재 부분적으로 유물 발굴 조사가 이뤄졌지만 집중적인 조사로 고려시대의 유구(流寇)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김경준 교감 = 부산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아대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덕신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두레문화기행, 강화시민연대, 강화발전연구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향토사학자로서 강화역사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강화도 역사산책’(2001·신대종) ‘강화충렬사지’(2005·강화충렬사유림회, 인천사연구소) ‘철종이야기’(2006·아이올리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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