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인천의 여름(下) - 해수욕장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8-01 15:16:12
해운대도 울고간 ‘월미도’ 백사장
(28) 인천의 여름(下) - 해수욕장
월미도와 송도유원지, 그리고 낙섬 저수지, 개건너 염전 저수지가 인천의 해수욕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월미도는 일제시대 때부터 내외에 이름을 떨치던 인천의 으뜸 휴양지요 여름철 해수욕장이었고, 그 다음이 1937년 수인선 개통에 즈음해서 조성된 송도유원지였다. 나머지 두 곳은 염전 저수지로서 여름이면 시민 해수욕장 구실을 했다.
지금은 매립이 되어 백사장과 아름다운 풍광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월미도는 1910년대 후반부터 원산의 송도원, 부산의 해운대를 제치고 단연 전국 최고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봄에는 만발한 벚꽃놀이로 붐볐고 여름에는 헤엄치는 인파가 들끓었다. 그 후 해변에 대형 풀이 증설되고, 밀물 때는 마치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설계한 일본식 요정 용궁각(龍宮閣)도 생겨났다. 1935년 무렵에는 3층 목조건물인 빈(濱)호텔이 건립되어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들었다. 월미도는 일본 패망 때까지 근 20년 간 전성기를 누렸다.
광복 후 우리 손에 의한 재건 노력이 있었으나 곧 이어 터진 6·25 동란으로 인해 오유(烏有)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후 오랜 군사 시설에서 풀리고, 근래 들어 많은 관심과 투자로써 다시 옛 명성을 살리려고는 하나, 산업항에 인접한 지리적 조건과 주변의 공장들, 그리고 섬 전체가 바다를 접할 수 없는 높다란 둑 위에 올라앉은 꼴이 되어 영영 해수욕장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송도유원지도 한동안 경인지역의 피서철 해수욕장으로 많은 인파가 모여 들었으나 주위가 온통 매립이 이뤄져 육지 안의 억지 풀장 형상이 되고 말았다. 이곳 또한 지난날의 명성을 잃고 조락해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부터 바닷물을 가두어 담은 대형 해수욕장과 무대시설,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와 운동장 및 동물원, 간이호텔 등을 시설했는데 월미도에 비해 수준이 대체로 떨어졌지만 병풍처럼 둘러선 청량산의 산세와 광활한 공간이 펼치는 자연 그대로의 쾌적한 환경만큼은 월미도를 능가했었다. 특히 유원지 앞의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섬 아암도는 썰물 때를 기다려 맨발로 걸어서 갈 수 있었던 곳으로 송도 유원지의 낭만을 맛볼 수 있던 곳이었지만 다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인근의 능허대에서부터 돌산 밑까지 펼쳐진 말굽형의 긴 백사장이야말로 그대로 두었으면 인천 최고의 명승이 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역시 매립이라는 주술에 걸려 그 자취를 잃고 말았다.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백사장에 앉아서 멀리 황해를 조망하는 것이 좋았던 아주 낭만적인 곳이었다.
익사 사고가 잦았던 낙섬 저수지는 여름 한철 망둥이 낚시와 해수욕장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 ‘토지금고’라고 불리는 남구 용현5동 일대가 염전지대였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며 저수지로 가는 긴 둑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개건너, 가좌동의 염전 저수지, 다리 밑의 수로 또한 낚시와 해수욕장으로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었다. 동구 송림동 ‘헐떡고개’쯤에서 내려다보는 네모반듯한 광활하게 펼쳐진 염전 지대 풍광도 대단한 장관이었다.
오늘은 모조리 사라진 인천의 여름 풍경을 살펴보았다. 우리 인천이 무엇을 위해 이런 것들을 모조리 쓸어 없애버리고는, 마침내 해수욕장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한 이상한 ‘도시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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