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 고추말리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9-22 02:35:43
햇살 가득 고추말리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고추를 남쪽의 야만인이 먹는 개자라 해서 남만초라고 했으며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왜개자라고 했다고 한다. 전설로도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우리를 독살하느라 들여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북쪽 오랑캐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들어온 듯하다. 그러나 일본측 문헌에는 오히려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로 보아 고추를 사용한 역사가 오래인 듯해도 실은 400년이 조금 초과했을 뿐이다. 고려 때부터 있어온 것으로 추측되는 김치에 고추로 양념하지 않았다. 도입 고추가 사용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식품이요 오늘날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고추의 매운 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맵지 않은 고추를 고추라고 할 수 있을까. ‘고추는 작아도 맵다’고 했으며 예전 우리네 아낙들의 호된 시집살이를 읊은 민요에도 “고초당초 맵다더니 시집보다 더 매우랴”고 했다. 서두의 ‘지봉유설’에는 “남만초 유대독”이라고 해서 고추에 큰 독이 있다고 했을 정도이다.
우리 식생활에서 고추는 빼놓을 수가 없다. 김치를 담그는 필수 양념이요 우리 음식 어디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향신료로 자리잡고 있다. 풋고추는 채소로도 많이 먹는데 씹히는 촉감도 좋다. 요즘 풋고추에 막된장을 식탁에 내놓는 음식점이 많다. 고추는 채소류 가운데 비타민C가 가장 풍부하다고 한다.
고추 말리기 풍경은 우리나라 가을 정취의 으뜸이다. 아침 이슬도 말라 물기가 없을 즈음에 밭에 나가 따다가 말린다. 요즘은 우천일 때 비닐하우스에서도 말린다는데 “뭐니뭐니 해도 고추는 햇볕에 말린 양초가 최고”였다. 고추말리기는 농촌만 아니라 도시서도 대유행이다. 작은 공터가 있으면 비집고 고추가 널린다. 아파트 주차장까지도 온통 붉다. 옥상에 올라갈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인천시민이 유난히 고추말리기를 선호한다고 보도된 때가 있었다. 어찌 인천시민만이 그렇겠는가. 부지런한 관습 때문이리라. 빨갛게 펴 널은 고추 위로 가을 햇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