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산의 삼랑성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10-27 18:19:01
정족산의 삼랑성
초지대교를 건너 온수리로 향하면 전방에 정족산이 나타난다. 전등사를 감싸안은 세 봉우리의 산이다. 마치 솥을 뒤집어 놓은 산세이다. 지금의 솥 모양과 달라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조리용이 아니라 권위의 상징으로 솥을 지녔는데 발이 세개 혹은 네개 달렸다. 즉 솥정(鼎)이어서 ‘정립’이나 ‘정족지세’라면 ‘셋이 맞선다’는 뜻이다. 강화도의 정족산이 꼭 그같은 산세이다.
그런데 정족산에는 산성이 있어 정족산성 혹은 삼랑성이라고 하는데 삼랑성에 대해선 단군의 세 아들이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단군이 세아들을 불러 정족산에 성을 쌓는데 돌이 많이 있어야겠으니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세 아들은 셋이서 힘을 합치면 어려움이 없겠으며 하늘의 도우심이 있겠다고 답했다. 다음날부터 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소문에 각지의 남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도았다.
그것이 오늘의 삼랑성이며 정족산에 있다고 해서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쌓은 기법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석성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최남선은 우리말 어원으로 따져 삼랑이나 정족이나 같다고 풀이한바 있다. 둘레가2천300m의 정족산성은 주위가 가파른 절벽으로 둘려 있어 천험의 요새이다. 성내에 문루와 우물 등이 남아있으며 전등사와 사고가 있고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우리 조선군에 의해 격퇴당한 바 있다. 이를 황현의 ‘매촌야록’은 이렇게 적고 있다.
“헌수는 그날밤 손석포(손돌목)를 건너 정족산성을 점거하였다. 그 다음날 양인들은 강화부에서 나와 군함을 타고 내려오려 하였으나 조수가 얕아 산성에서 조금 쉬기 위해 서서히 남문 밖으로 나왔다. 이때 갑자기 복병이 일어나자 적들은 황급히 후퇴하므로 그들을 대포로 추격하여 30여명의 목을 베고 개선하였다.”
삼랑성의 역사성을 중요시하여 ‘삼랑’이 강화도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하여 교명을 빌어 이름한 삼랑중학교가 있고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도 있다. ‘2009, 역사와 웃음으로 소통’이라는 이름의 올 축제가 전등사에서 열리고 있다. 시내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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