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인명사전의 허와 실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12-30 14:52:15
친북인명사전의 허와 실
김준기 인천대 국문학과 객원교수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에 맞서 보수성향 민간 단체인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친북 반국가행위 인명사전’을 편찬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이념의 갈등으로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이 사전이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맞불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이에는 이로 맞서겠다는 추진위의 의지와 의도를 감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지적됐듯이 친일인명사전은 임의적이고 일방적인 기준과 시각으로 친일 여부를 판단한 편향적인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내선일체에 동조하는 글을 쓰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국방헌금을 헌납한 행위, 관료의 직급 정도 등이 친일파 선정의 기준이 됐다고 하는데 그 잣대가 획일적이고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록 숙청당하기는 했지만 월북해서 고위관료를 지낸 사람들은 제외한 채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친일파로 몰아세운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일관성과 공정한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 저의에 대해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판단을 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에 국민이나 항일 독립투사를 모신 독립기념관이 아닌 노 전 대통령 묘소에서 발간 과정을 보고하고 보고서를 바친 행태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 친일진상규명위원회에서 실무 조사에 참여했던 50여명의 조사관을 비롯해 친일반민족행위 여부를 결정하는데 관여한 위원의 선인들은 일제시대에 무엇을 했고 그 가운데 과연 누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끝까지 반대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믿었던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독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염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씨개명과 친일 행위는 민족의식과 관계없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일제 강점기하의 현실적 한계였다.
친북인명사전의 발간에는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기반한 역사적인 명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분명하게 내재해 있어야 한다. 이 사전은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파괴할 의도가 있거나 노동자 계급 주도의 지하 혁명당을 결성해 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위와 함께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주장하고 북한의 대남 정책을 지지·선동하며 북한의 노선을 고무·찬양·선전·동조하는 행위를 친북·반국가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정상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왔고 현행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유력 인사의 친북적인 발언이나 행적을 어디까지 문제 삼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작업이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이긴 상태라고 믿고 더 이상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이 사전 발간도 소모적인 논쟁만을 부추기는 불필요한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친일파 청산의 궁극적인 의미가 결국 친미적인 보수 기득권 계층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 있다고 의심한다면 더군다나 이 사전이 이러한 공격에 대한 방어와 역공격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상대가 자신에게 행한 대로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만큼 유치한 보복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령 친일인명사전에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 사전의 부당성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러나 그 동안 누가,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거부해 왔는가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 또한 숨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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