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를 모르면… 그대로 두어라
仁川愛/인천이야기
2010-01-09 18:09:36
강화를 모르면… 그대로 두어라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경제학 박사)
1970년대 후반 이스라엘의 농업상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 사람이 경상도의 새마을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내무부의 한 국장 방에서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공무원들 사이에 흘러나와 화제가 됐다. 당시 내무부의 국장은 “우리나라 새마을운동 어떠냐? 당신들의 키부츠(Kibbutz:이스라엘 집단거주지)보다 낫지?”라는 정도로 으스댔다는 이야기이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 농림상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이스라엘에 당신 나라와 같은 ‘물’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오늘의 이스라엘이 아닐 것이다”라는 짤막한 대답만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막의 나라다. 그래서 갈릴리호라는 먼 수원(水源)의 확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왔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바닷물을 먹는 물로 바꾸는 공장을 세운 나라다. 그런 나라가 농업을 국가적인 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이스라엘의 감귤은 유럽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고 화훼에서도 네덜란드와 국제적인 시장점유율을 다툰다. 낙농에서조차도 이스라엘의 젖소들이 양과 질에서 모두 세계 최고수준의 우유를 생산해 낸다. 모두 물방울을 금싸라기처럼 이용한 결과라고 한다. 농업상의 말뜻을 되새기게 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물의 나라다. 한강다리에서 강물을 그대로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방방곡곡 어디를 헤매다가도 맑은 물빛만 믿고 목을 축이면 탈이 날 염려가 없는, 지구 위에 흔치 않은 나라였다. 제 아무리 물 자랑을 하는 나라들이라 하더라도 아무데서 아무 물이나 떠서 마셨다가는 온전하기가 힘들다. 어딘가에는 눈으로 분별할 수 없는 독수(毒水)가 흐르기 때문이다. 이 나라야말로 물의 축복을 받은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던 나라가 이제 물 부족 가능국가가 됐다고도 하고 내수면의 절대량이 심각하게 오염이 돼 물 자랑하기는 어려운 나라가 됐다고도 한다. 그래서 망가진 강을 살린다고 나라가 온통 전투 중이다. 지하 암반대수층의 수량과 수질조차 위험한 수준이라는 이야기이고 한강의 수량은 날로 줄어가고 있다. 물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던 시절에 물을 박대했던 결과다. 이제 와서 우리가 1950년대 이전의 물만 가지고 있어도 돈 걱정 안할 거라는 후회의 목소리가 안쓰럽다.
우리에게는 물 말고도 다른 귀한 자원들이 많이 있었다. 삼면의 바다도 그렇고 석유에 버금가는 화학공업 원재료인 석회석(CaCO)도 그렇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자연과 인문을 가진 제주가 그렇다. 톨레도나 그라나다에 뒤질 것이 없는 경주가 그렇고 최고의 생태계와 풍광을 보장하는 금수강산의 살진 토양과 화려한 사계가 그렇다. 남들이라면, 이 중 한 두 가지만 가지고도 능히 배부른 나라를 만들고도 남았을 자원들이다.
그러나 삼면의 바다는 모두 폐허가 돼가고 있고 석회석은 시멘트의 원재료와 제철용 촉매제라는 싸구려 자원으로 소진했다. 제주는 온통 6~8차선의 아스팔트 도로와 쉰 개에 육박하는 골프장, 몰개념한 건축물들로 파괴가 진행 중이고, 경주의 남산은 보호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게 방치돼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이름이 부끄럽다. 세계 최고 목질의 고가목재를 생산할 수 있다는 토양과 기후는 단 한 번도 산업화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없고, 세계 최고의 미각을 만들어 내는 농수축산물은 바야흐로 전면 포기 직전의 상황이다. 주인들에게서, 남에게는 보여 줄만한 것이 못된다고 일찌감치 버림받은 금수강산과 오천년의 역사야 이야기해봐야 무엇할 것인가.
모두가 무지의 결과다. 아니, 무지를 반성하고 인정할 줄조차 모르는 파렴치와 오만, 독선의 결과다. 또는 당장 눈앞의 몇 푼 이익과 어설픈 자기부정의 이념에 눈이 먼, 시건방진, 소위 시대의 흐름 탓일 것이다.
요즘 강화를 바라보기가 민망하다. 조력발전에, 연륙교, 경제자유구역, 골프장.... 삽날 앞에 풍전등화의 모습이다. 선사의 유적부터 근 현대 삶의 흔적까지, 한반도에 이보다 더 밀집된 역사를 담고 있는 땅이 따로 없건만 대한민국의 초 중등역사 교과서조차 아직도 이러한 사실(史實)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강화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에 강화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강화를 또 다시 이 나라 ‘물’의 운명을 만들 것인가. 역사의 흔적은 재생되지 않는다. 그 가치를 알아볼 이들이 올 때까지 제발 강화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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