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상하는 일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1-31 14:14:09
자존심 상하는 일
“우리를 감탄하게 하고 또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한가지 일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느 곳이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아마도 프랑스에서 문맹자들을 조선에서와 같이 멸시한다면 프랑스에서는 무시당할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동행했던 주베르라는 사람이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 ‘강화도 원정기’의 한 부분이다. 이 글에서 그는 조선이 야만국이 아니라 문화국임을 밝히고 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책이 있다고 하면서 문맹자가 아주 드물다고 했다.
병인양요는 1866년 우리나라의 천주교도 학살을 구실로 프랑스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이다. 양요라 함은 서양 오랑캐들이 일으킨 소요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해 8월 로스 사령관이 함대를 이끌고 인천을 거쳐 서울 서강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9월에는 전열을 갖춰 강화도에 상륙했다. 연초 대원군이 천주교금압령을 내리고 프랑스인 선교사를 비롯한 우리 천주교도를 학살한데 대한 응징이었다.
그들은 조선 국왕의 폐위를 선언하고 국왕과 관리의 재산을 몰수, 희생자에게 보상하며 조선세관을 지배하며 무력을 조선을 개항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김포 문수산성에서 패하고 정족산성에서 우리 양헌수군에게 참패했다. 더 지탱 못하자 그들은 강화성에 불을 지르고 퇴각했다. 이 때 외규장각과 관아 곳곳에서 서적과 귀중품을 약탈해 갔다. 지금 한불 간의 외규장각 도서반환시비가 그것이다.
당시 강화읍성 행궁의 외규장각에는 6천여권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그들이 철수하면서 345권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주베르의 글에서 처럼 자신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책이었던 만큼 우선 도서를 약탈하고 가져갈 수 없는 것은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을 한때 반환하겠다더니 다시 못내주겠다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소재 도서반환 방안에서 국내법원 소송제기와 중국 등과 연대해야 하는 대안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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