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마가 되어 오다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1-31 14:13:18
우주마가 되어 오다
1988년 여름이었다. 15년 동안이나 지역신문이 없던 시절 인천에 새로운 신문의 창간을 준비하던 때였다. 창간특집으로 어느 화가를 초대할 것이냐를 놓고 의논들이 있었다. 그 시절 신문마다 창간기념이나 신년호 특집을 만들 때 시인의 축시와 미술인의 작품을 함께 싣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 때 전망차자의 주장으로 전혀 새롭고 신선한 신인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 주인공이 그해 서울대 미술대를 졸업한 박동진 화백이었다.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몇몇 작가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이었다. 제물포역전인가에 산다는 그가 커다란 유화 캔버스를 들고 신문사로 찾아왔다.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온통 파란 화폭에서 어렴풋이 말 한 마리가 비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창간호 지면을 장식했다.
그는 목마에 대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그렸다고 했다. 그 시절은 목마가 골목안을 누비는 때였다. 리어카에 회전하거나 스프링에 튀는 목마를 싣고 동요를 울리며 찾아오면 어린것들이 엄마를 졸라 그것에 매달려 즐거워하던 때였다. 작가는 그것에서 과거와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작품메모’에 적었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계속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 후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서였다. 그가 ‘캔버스속의 우주마’가 되어 돌아왔다. 인천신문 1월19일자 문화면의 ‘서양화가 박동진 개인전’이라는 표제의 기사에서였다. 지면에 실린 두 점의 작품에서 말그림으로 인해 전망차자는 한 눈에 그것이 박동진 화백의 작품인 것을 알았다. 역시 그였다. 올해 48세의 중견작가로서 춘천교대 교수이며 국전 심사위원과 인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속에 담긴 내용을 생각하고 깊이를 추구한다면서 “관람객 누구나 마음 편히 작품속에 들어와 즐겁게 노닐다 나갈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송동 갤러리 고도에서 열한 번째의 개인전을 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