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수인선과 소래철교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2-16 12:58:07
60년 세월 숨차게 달리던 우리나라 유일 협궤철도
(54) 수인선과 소래철교
수인선은 일제가 경기도 여주, 이천 등지에서 나는 최상품 쌀을 인천항으로 운반해 가려는 의도와 경기도 수원을 기점으로 해서 강원도 춘천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내륙 개발이 목적이었다. 또한 소래, 군자 등지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의 운반 수단이기도 했다. 더불어 1931년 만보산(萬寶山)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대륙 침탈을 획책하던 일제가 유원지인 월미도를 병참기지로 만들고 대신 송도를 새로운 위락지구로 개발함으로써 수인선 승객을 유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수인철도는 193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937년에 개통된다. 이른바 사철(私鐵)인 경동철도주식회사(京東鐵道株式會社)가 1910년대부터 10여 년간 철도 부설을 출원하다가 1928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얻어 제1기 사업으로 1929년에 수원-여주 간 수려선 43㎞ 공사를 착공하고, 2기 사업으로 수원-인천 간 수인선 27㎞ 구간 공사를 계획한 것이다.
수인선은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철도(挾軌鐵道)였는데, 왜 이 철도를 선택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928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는 수인선이 협궤철도로 놓이면서 얻게 되는 이점을 이렇게 적고 있다.
“현재 선내(鮮內) 사철에서 취해온 광궤선(廣軌線)의 경제적으로 보아 불리(不利)되는 단점을 버리고 거액을 요하는 건설비, 운전비 등을 반감(半減)할 협궤철도 취할 방침이라는데 협궤도의 결함되는 속도지연과 견인력 미물(微物) 및 차량 용량 협소 등은 교통기관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요 시대적인 단차(單車) 및 연결궤도 자동차를 사용하여 협궤도의 결함을 보충하고 화물 수송에는 증기철도를 전용(專用)하리라는 바 이리하여 조선 내 사철 중 제일 수익이 많은 경제선이 되리라고 자신한다는데….”
또 한편, 1935년 10월 3일자 동아일보는 수인선 부설이 인가된 것을 보도하며, 이 철로가 가져올 이점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내용은 이 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철로 부설을 발판으로 한반도 중부 내륙을 경영하려는 일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수원 인천 간은 47㎞이라 현재 국철의 영등포를 돌아서 62km 2분에 비하면 거리에 있어서 15㎞ 2분이 단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사의 선로 여주-흥호리 간 철도가 개통되는데 따라 강원도 오지와 인천항과의 물화와 여객 교통이 직접 편리하게 되며 또 한편으로는 이 연선의 염전 확장 계획에도 서광이 비치게 되어 조선 내의 염산 자급에도 큰 도움이 있으리라고 기대된다고 한다.”
소래철교 역시도 일제가 한반도 수탈을 위해 부설한 수인선의 일부분이었지만, 소래와 월곶을 이어 작은 기차가 숨차게 내달리던 60년 세월, 협궤철도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이제 단 하나 남은 존재이다. 더불어 이 철교는 어쩔 수 없이 서민의 애환이 서린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이다. 언젠가 이 철교에 대해 이렇게 짧은 단상을 적은 적이 있다.
“춥고 좁은 철교를 건너는 게 두려웠을까. 보통 열차보다 덩치도 작고 다리도 짧은 꼬마열차는 곱절은 더 숨이 차는 것 같다. 가쁘게 토해 놓은 검은 연기, 그 밑에 보이는 가지런한 염전과 지붕 낮은 소금창고들. 이 겨울 모두 사라지고 없다. 아, 옛날은 이렇게 추억 속에 흐려져야만 하는 것인지…. 문득 ‘왜애액’ 하고 질러 대던 협궤 열차의 비명소리가 가슴 떨리게 그리워진다.”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역사’를 생각하면서 사업을 할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소래철교 통행금지’ 안내문부터 붙이는 행위는 그저 기막힐 뿐이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아래의 글은 협궤열차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김 석배 레오 님의 협궤열차에 대한 설명
수인선 狹軌鐵道線(협궤철도선)으로서 우리나라의 유일한 철도라고 하는것은 철도역사를 잘 모르고 쓴것입니다. 수인선을 시공할 당시 京畿道(경기도) 土城驛(토성역)에서 黃海道(황해도) 甕津驛(옹진역)까지의 黃海線(황해선)을 모델로 하여 건설계획을 짰읍니다.
나는 1937년에 개통당시 아버님하고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蘇來鐵橋(소래철교)를 넘어간 적도 있읍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京義線 土城驛(토성역)에서 차를 가라타고 黃海道(황해도) 海州驛(해주역)을 다섯차래 우리나라 최초의 狹軌車(협궤차)를 타 본 경험이 있읍니다. 당시의 黃海線(황해선)이나 水仁線(수인선)의 機罐車(기관차)와 客車(객차)의 크기와 구조는 똑 같앴읍니다.
그럼으로 수인선이 우리나라 유일의 최초라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 SINGMAN 님의 협궤열차에 대한 설명입니다..
찾아보니..
황해선은
경의선(京義線)의 사리원(沙里院)에서 황해안 부근의 장연(長淵)에 이르는 협궤(狹軌) 철도선으로 1920년 6월에 착공, 1937년 1월 21일 완공하였는데, 북한에서는 은파선으로 부른다..
해주선은
경의선(京義線)의 사리원(沙里院)과 황해도 해주를 잇는 협궤 철도선으로 사해선(沙海線)이라고도 한다. 사철(私鐵)인 조선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하였다.
해주와 옹진 사이는 옹진선이라 하고..해옹선이라고도 하고..
당시 이북에는 협궤가 많았더군요.
함경도 쪽에도 많더군요.
아마 산악지대가 많아 설치가 용이한 협궤철도를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토성과 해주는 토해선이라고 하고 어디에는 조선철도 황해선이라고도 쓰여 있고..
지금 이북에서는 황해청년선이라고 한다는군요.
우리나라의 최초의 협궤는 1899년 서울 전차궤도 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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