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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6 중구청>

by 형과니 2023. 6. 11.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6 중구청>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3-27 11:35:58

 

아픈 과거 딛고 인천행정의 중심지로 부상

1985년 중구 관동 떠나 구월동으로 이전, 인천시 행정 구월동시대 열려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6 중구청>

 

 

인천시민들 중에도 관동 19번지에 위치한 현 중구청이 옛 인천시청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인천시청이 행정에 있어 구월동시대가 열린 것은 1985년 관동을 떠나 인천시청이 구월동 신청사로 이전하면서부터다.

인천시청의 역사는 인천 도시성장사와 궤도를 같이 해왔다.중구 관동시대에서 남동구 구월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도시 규모가 확대될 때마다 인천시청의 심장부인 시청도 그 모습을 달리했다.인천 토박이나 인천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한 공무원들은 시청이 중구 관동에 자리 잡고 있었던 관동시대를 기억한다.일제시대의 건축양식이 곳곳에 묻어나는 것은 물론 현대 건축물과 확연하게 다른 내부 설계가 시간의 역류를 느끼게 해준다.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 하면서 현재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의 역사는 개항기인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조선 침탈을 위해 인천 개항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일본은 인천에서의 이권을 선점하기위해 18824월께 지금의 중구 중앙동 1가 옛 조달청 인천사무소 자리에 2채의 가건물을 짓고 영업사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은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양식 2층 목조건물을 지어 188311월 정식으로 영사관을 개설하며 영사관 구내에 부속경찰서와 감옥을 설치했다. 이어 일본은 19062월 영사관을 이사청으로 개편했다가 1910년에는 인천 부청으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하다가 인천부청으로 확대 개편한 청사사진

 

 

그 후 이 건물은 우여곡절 끝에 1932년 철거되고 이듬해인 1933년 철거된 자리에 인천부청 신청사가 들어섰는데 바로 이건물이 인천시청에 이어 오늘날 중구청으로 사용되며 인천행정의 메카가 된다. 인천부청사의 건립 이후 그 주변으로는 많은 관공서가 밀집해 있었는데 관동(官洞)이란 지명의 유래를 이 같은 지역적 특성에서 찾는 이도 있다.

 

현재 중구청으로 사용중인 옛 인천시청 청사

 

 

시청과 같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과 인천우체국 등이 시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반면, 이 건물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화재로 지정이 안돼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이 건물이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 건축가들도 감탄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점이다.

건물 벽 두께가 무려 50에 달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인천부청사였던 이 건물에 인천시청간판이 처음 걸린 것은 1949815일 지방자치제 실시로 인천부가 인천시로 개칭되면서부터다. 이어 인천시는 1950년대 중반에 들어 점차 사회가 안정되고 인구수 증가에 따라 출장소제를 전면으로 실시하게 된다. 이때 중부, 북부, 동부, 남부, 주안, 부평, 서곳, 남동, 문학출장소 등 모두 9개의 출장소가 설치됐다.

 

 

1968년 인구가 55만명으로 팽창해 서울, 부산, 대구에 이어 전국 4대도시로 부상한 인천은 구제(區制)실시로 다시 한번 행정체제의 대변혁을 맞게 된다. 198171일 직할시로 승격한데 이어 드디어 1983년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며 구월동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정화 내무부장관과 김찬희 시장이 인천직할시현판을 하고 있다.

 

 

구월동 1138번지에 68,696를 확보, 1983년부터 3년간 시청사 신축공사를 벌여 1985129일 지하 2층 지상 4층에 연면적 24,774의 신청사가 개청됐다.

 

구월동에 자리하고 있는 현 인청광역시 청사

 

 

19842월 경인일보신문사에 입사한 필자는 2개월간의 연수기간 중 경기도와 인천시 관내의 관공서 및 기업체들을 방문했다. 이 때 수습생이던 우리 일행은 인천시청 공사현장을 방문, 시청 청사가 왜 이렇게 크냐, 시청 입구 도로는 왜 이렇게 넓게 만들었느냐고 따지자 시 관계자의 백년대계를 보고 한 행정이라는 답변이 당시에는 이해가 안됐다. 4층 규모의 건물에 엘리베이터 설치는 시장전용 아니냐는 질문에 시 관계자는 장애인용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참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했던 것이다.

 

 

시청 건물은 100년은 커녕 10년이 지나자 청사가 비좁아 여러 차례의 증축공사를 실시했으나 역부족으로 인천시는 현재 청사이전을 고려 중에 있다. 이렇듯 한치 앞을 보지 못하던 우리 수습생들의 우매함에 관계자들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난다. 한 예로 1996년에 인천시청 옆에 신축한 인천시 교육청은 건축 당시 엘레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장애인들의 항의 끝에 지난 2004년 엘리베이터를 뒤늦게 설치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현재 인천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장소도 비좁고 시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천시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공직자들의 근무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남용우 객원기자 nyw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