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늘어진 마을, 답동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3-27 11:39:05
바다로 늘어진 마을, 답동
답동성당과 박문초등으로 명성 날려
답동(沓洞)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선창리에 속해 있던 땅이다. ‘논골’이라 불리던 동네로, 1903년 8월 인천부에 부내면이 생길 때 한자로 이름을 바뀌어 답동이 됐다. 논 답(沓)를 쓴 것은 ‘논골’의 논을 농사를 짓는 논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인천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이곳은 대부분 논 이었다고 하며, 바닷가 쪽으로는 지금처럼 매립되기 전까지 염전이 있어서 염벗말, 곧 소금밭이라는 불리던 마을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닷물이 들어오는 마을에 방죽도 없이 논이 많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이 때문에 국어학자들은 ‘바다 쪽으로 늘어져있는 마을’ 곧 ‘는골’이라 불렸으며 능골, 농골, 논골의 변화를 거쳐 동네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본다.
이 일대 언덕배기에서 바다 쪽으로 차츰 낮아지며 늘어져 내려간 땅이어서 생긴 이름인 것이다. 답동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사적 287호인 답동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었던 죠셉 빌헬름 신부가 1889년 인천에서 처음 선교 활동을 벌일 때 터를 마련하며 사업이 시작돼 1897년 준공됐다. 그 뒤, 신도가 늘어나자 원래 있던 성당 바깥으로 어렵게 증축공사를 벌여 오늘에 이르렀다.
〈 1960년대 답동 로타리의 시계탑. 건너편 건물에 ‘키네마’ 극장이 있었다. 〉
1960년대 답동성당과 신흥초등학교 사이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는데 이 동산에 당시 넝마주의 (종이를 줍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며 패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얼마나 사납고 무서웠는지 인천에서 내놔라 하는 건달들도 이들 집단을 건드리지 못했다.
특히, 이들은 답동과 신흥동 일대에서 강도를 비롯한 좀 도둑들이 설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이들이 저지른 행위로 오해를 받기 때문에 사전 예방으로 오해의 소지를 방지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근의 주민들은 이들 넝마주의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또 1970년대 들어서는 답동과 신포동 인근의 건달들이 맞짱(단둘이 주먹으로 싸우는 것)을 할 때면 으레 답동성당으로 올라갔다. 밤의 성당은 조용한데다가 치안에서도 소외 지역으로 경찰의 순찰이 뜸한 것을 이용, 싸움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던 것이다. 물론 맨손으로 싸움을 했기 때문에 상대가 큰 상처를 입지 않아 싸움이 끝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와 인근의 대포집에서 화해의 술을 나누고 헤어지곤 했다.
〈 한국전쟁 중에도 무사한 답동성당이 폐허가 된 인근 건물 틈새로 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
이와 함께 이 성당에는 1900년 박문초등학교를 개교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장면(張勉)박사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장기빈은 인천 해관에 근무하던 천주교인으로 답동성당의 건축과 운영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화약, 석유 수입과 정미소 운영으로 큰돈을 모은 미국 상인 타운센트의 “타운센트 상회‘에서 한 때 지배인으로도 일했으며 그의 아들 가운데 장면, 장발, 장극 3형제 모두 뛰어나 ’인천의 3장으로 불렀다. 이중 장면씨는 일제 치하에서 ‘소극적 친일 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광복 이후 부통령에 이어 제2공화국 수반으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장발씨는 미국에서 생활하며 100세가 되도록 현역화가로 활동하다 세상을 떴다. 그는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 순교한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신부 김대건의 성화를 교황청에 바칠 만큼 실력있는 화가였고, 한국에 있을때는 서울대 미술대 초대 미술 대학장을 지냈다. 그 분야와 관련해 그가 쓴 책이 20여개 나라에서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 97년에는 4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인천대학교의 석좌 교수로 취임하기도 했다.
남용우 객원기자 nyw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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