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인천 하루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4-02 16:02:08
정조의 인천 하루
조선조 22대 정조는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끈 임금이다. 어려서 열한살에 당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비운의 임금이다. 왕위에 오르자 생부의 묘원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능행차를 자주 했다. “모처럼 능참봉을 얻어하려니까 임금님 거동이 한 달에 스물아홉번”이라는 능참봉의 넋두리가 생길 정도였다. 당시의 능행차 코스는 이러했다. 동작나루에 가설한 배다리로 도강해 과천의 남태령을 넘고 지지대고개에 이르러 수원성에 닿았다. 훗날 이를 변경, 노량진에서 지금의 대방동을 지나 안양으로 해서였다.
그처럼 어려웠던 임금의 행차가 인천에도 있었다. 궁중 법도로 임금이 도성에서 백리 밖을 벗어날 수 없으며 한강을 건너기가 번거롭던 때였다. 재위 21년(1797) 여름 김포 장릉과 화산릉 참배를 가는 길이었다. 장릉은 16대 인조 임금의 부왕이요 사후 추존한 정원군의 능침이다. 김포시 풍무동-인천시 원당동 골짜기에 소재한다.
그곳에서 부평 인천 안산 남양을 지나는 여정이었는데 부평에서의 하루를 이훈익옹의 ‘인천지방 향토사담’과 2007년 간 ‘부평사’에서 상세히 적고 있다. 정조는 김포 이궁을 떠나 장모루와 계양산 경명현을 거쳐 지금의 계산동 부평부 관아에 도착했다. 완벽한 준비에 임금과 수행원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부사 윤광석이 지나는 길에 광목을 깔고 점심을 대접했다. 임금은 그곳에서 시도 짓고 노인들과 담소하며 사또의 간청으로 고질화한 환수곡을 탕감해 주었다. 접대비용을 부담한 당부자에게는 즉석에서 좌수 벼슬을 내렸다. 부평을 떠나 비루고개에서 인천 경내에 접어들었으나 날이 저물어 인천부내에는 들르지 못하고 야밤에야 안산에 도착했다.
인천중앙도서관이 ‘정조대왕의 큰뜻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문화탐방교실을 운영한다고 한다. 4월 한달 동안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다. 그리고 기간 중에는 정조와 사도세자가 잠들고 있는 수원 화산의 융건릉을 견학하게 된다. 이번 기회에 지금은 거의 훼파된 옛 정조대왕이 지나가던 김포 장릉에서 부평부 그리고 안산에 이르는 코스도 조명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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