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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사잇섬으로의 복귀

by 형과니 2023. 6. 12.

사잇섬으로의 복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4-19 12:25:39


사잇섬으로의 복귀

 

모화사상의 흔적이라 할 소정방이 머물렀다는 지명이 국내에 몇곳 있다. 전남 변산반도의 내소사가 그렇고 시흥시의 소래산이 그렇고 인천 앞바다 덕적도와 마주하는 소야도가 그렇다. 소야도야 중국에서 건너오는 길목이어서 그렇겠다고 했겠거니와 내소사와 소래산은 지리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백제 정벌의 당군이 어찌 그곳으로 상륙했겠는가.

근래 소정방이 주둔했었다는 소야도 역시 그와 무관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소야도가 덕적도의 부속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긍이 갈만하다. 군사기지 여건으로 보아 덕적 본도에 상륙할 것이지 그보다 훨씬 못한 소야도를 택했을리가 없다. 이 역시 백마강 하구에 이르는데 충남의 당진 등지로 직행했어야지 덕적을 거쳐 갔으리라 여겨지지 않는다.

소야(蘇爺)도의 원래 이름은 사야(士也) 신야(新也)도였으며 사야(史也)로 병기했던 것이 조선조 후기에 소야도가 되었다는데 사야나 신야의 뜻풀이는 사잇섬 새섬이었다는 것이다. 즉 인천이나 강화 남양등지에서 서쪽으로 항로를 따라 나가면 무의와 자월도 사이로 울타리처럼 소야도가 보이는데 그래서 사잇섬 새섬(新島 間島)이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세종지리지 등에도 사야 신야도로 기록되어 있으니 사야(史也)도로 복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고 한다.

소야도는 덕적군도에 속하는 면적 3.03㎢의 작은 섬이다. 덕적본도에서 남으로 500m 거리의 갯골을 사이에 두고 있다. 인천항으로부터 서남쪽으로 48㎞ 되는 곳이며 선편으로는 덕적행 객선을 이용한다. 근해에 어족의 회유가 많아 어장이 성했으나 점차 불황을 겪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천명이 넘는 인구였으나 점차 줄어 90년대말 98가구에 인구 213명이었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초중고교가 각 한곳씩 있었다.

덕적도와 소야도 사이의 연도교가 구상중이라는 보도이다. 인천시의 장봉도와 모도간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간 등 연안도서 연결안에 따른 것인데 이미 수년전 부터 타당성 조사가 있었으나 아직까지 착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도교와 함께 사야도의 복원이 함께 추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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