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고아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7-24 13:48:24
<카리브 바다의 정기를 타고난 콜롬비아 용사들/국제연합의 깃발을 높이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마침내 611명의 고귀한 생명이 피를 흘렸다/우리는 그들을 길이 기념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운다>
가정동 경인고속도로변에 세워진 콜롬비아참전기념비 비문이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당시 지상군 1개대대 연인원 4천300명과 함정1척을 보내 우리와 함께 싸워 6백여명의 전사상자를 냈으며 지금도 참전자 1천200명이 생존해있다. 이를 기념하여 1975년9월24일 비를 세웠다. 백색기념비 전면에는 콜롬부스의 신대륙발견을 상징하는 두젊은이가 형상화되어 있으며 주변에 산책로와 어린이놀이터 등이 갖춰져 있다.
콜롬비아는 남미대륙 북서쪽에 위치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이다. 우리정부는 그곳에도 참전기념비를 세우고 우의를 기리고 있다. 1973년 그나라 수도 보고타 국방대학내에 건립한 석가탑 모형의 참전비와 또 하나는 2008년 까르따헤나 해군공원에 세운 거북선 모양의 기념비이다. 그곳은 파병당시 우리나라를 향해 출항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콜롬비아 참전군을 추억하면 한편의 애절한 고아 이야기가 생각난다. 81년 콜롬비아에서 뿌리를 찾아 애태우는 한국전고아가 외신을 타고 전해졌던 사연이다. 휴전당시 세살이었다는 그는 콜롬비아군 양부의 백속에 숨겨져 남미로 떠난것이 기억의 전부라고 했었다. 다만 고아를 발견한 부대가 인천에 주둔했었다고 하나 그것은 착각인듯했다. 콜롬비아군은 경기도 연천에서 전투중이었으니 연천과 인천의 혼돈은 아닌지 그리고 귀국할때 인천에서 출항했던것은 아닌지 분명치않다.
81년 여름 자신을 찾고있던 한국전 고아는 성인이 되어 결혼 세자녀를 둔 가장이요 콜롬비아 시민이 되어있었던것이다. 이역만리에서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우리말은 한마디도 할수없지만 그는 분명한 한국인이라고 했었다. 지금은 뉴타운 개발지역이요 경인고속 직선화등으로 참전비 이전이 불가피한데 수년째 계획일뿐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그 보도를 보면서 단발로 그쳤던 한국전고아 기사도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