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개구리 새터전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6-27 20:54:26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드리고 아들을 구하였는데 하루는 왕의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돌을 보고 눈물을 흘리므로 왕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 보니 그 밑에 한 어린아이가 있는데 빛은 금빛 같고 모양은 개구리와 같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축복을 준 것이라” 하고 곧 거두어 기르며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는데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세웠다.
금와는 해부루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했다. 훗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났다. 그녀가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정을 통하고 부모에게서 쫓겨나 홀로 살고있다고 했다. 금와왕이 그를 데려다가 방가운데 가두었더니 내려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이 나오게 되었다. 삼국사기 고구려시조 동명성왕조에 관한 대강의 줄거리이다.
큰바위 밑에서 나왔다는 금와는 생김새가 개구리요 빛이 금빛일뿐 개구리를 의인화한 것인지 아니면 생김새가 개구리 모양의 사람이었는지 분명치않다. 그러니 오늘날 개구리의 일종인 금개구리는 분명 아니었을께다. 다만 금와왕의 설화에서 처럼 개구리는 옛날 왕권과 관련하여 신성을 상징하고 왕의 후계자를 금빛으로 상징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개구리는 다산을 뜻했다.
아무튼 서구의 공촌천 주변이 금개구리 터전으로 되살아나리라는 보도이다. 그동안 청라지구 개발로 공촌천 주변이 훼손되므로 금개구리들 생존에 위협받아 왔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새로운 서식지 조성 등 금개구리의 이주대책을 추진해왔는데 새 서식지로의 이주과정등이 부실하여 결과가 어떨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금개구리는 여름철 논 웅덩이의 작은 개구리로 등에 두줄 금색줄이 그어져 있어 금줄개구리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접근해도 움직임이 둔하여 눈만 껌벅거려 ‘멍텅구리 개구리’라고도 했었다. 근래에 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에 있으며 학계의 복원사업이 진행중이다. 아무리 미물의 개구리라도 생존할수 없는 곳이면 사람들도 지장받는다.
'오광철의 전망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문석 새벽장 (0) | 2023.06.14 |
---|---|
콜롬비아 고아 (0) | 2023.06.14 |
막도장 막내리다 (0) | 2023.06.13 |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0) | 2023.06.13 |
함께 박물관 한바퀴 (0) | 2023.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