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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막도장 막내리다

by 형과니 2023. 6. 13.

막도장 막내리다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6-27 20:50:57

 

60년대초반 인천의 신문사들은 활자 한개라도 소중했다. 본문은 아니라도 굵은 제목활자가 그랬다. 편집중에 제목을 달다가 관련한 활자가 없으면 급히 도장포로 달려갔었다. 목각(木刻)을 새기기 위해서였다. 목각이란 활자 대용으로 활자 크기의 나무에 글자를 새긴 임시활자였다. 당시 도장포는 지금의 중앙동 경기매일신문사 옆에 있었다. 주인은 키가 작은 M씨였다.

그때 도장포에는 나무도장이 많았다. 작은 타원형 나무토막의 막도장이었는데 급하게 도장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름 석자를 새겨주었다. 그처럼 나무도장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수요가 따랐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민원을 취급하는 관서가 많았다. 인천시청과 병사구사령부 원호청 등이었다. 시급한 민원발급에 막도장이 요긴했지만 일부 관리들의 부정행위에도 그것은 이용되었다. 그래서 당시 나무도장은 도장포뿐 아니라 관리의 테이블 서랍에도 수북했었다.

도장은 여러가지 문서에 적법성을 부여한다. 재료도 여러가지여서 나무나 돌에도 조각하고 고무나 수정 상아에도 새긴다. 이를 통틀어 인장(印章)이라고 하지 도장이라고하면 옳지않다. 특히 서예가나 화가는 자기의 작품에 자필의 증거로서 전각을 치는데 이것을 낙관이라고 했다. 전각(篆刻)이란 돌 따위에 전(篆)자로 새긴 인장을 말하며 낙관(落款)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한동안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상아제품을 사오더니 나중엔 전각용 돌을 사왔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계양산에 도장나무가 많았다고 했다. 곧 회양나무였으며 도장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해서 도장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나무는 아주 느리게 자라 직경이 25㎝ 정도로 자라려면 적어도 600∼700년은 걸려야 했는데 더디 자라는 만큼 재질이 치밀하고 균일한데다 광택까지 있어 도장의 재료로서 훌륭했다. 이 회양목은 정원 울타리용으로도 많이 심는다.

그처럼 흔하던 막도장이 품귀현상에 값도 비싸다고 한다. 도장을 많이 사용않는데 따라 생산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대변화의 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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