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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모습

인천전환국

by 형과니 2023. 6. 14.

인천전환국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10-11 23:11:42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통된 신식화폐가 인천에서 주조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개항이후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화폐 유통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조선 정부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화폐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1883년에 처음으로 조폐 기관인 전환국을 서울에 설립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제조기계와 기술인력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근대적인 화폐를 제조할 수 없었다. 이에 1885, 인천에 있었던 독일의 세창양행의 설계로 새롭게 전환국 건물을 마련하고 기계를 새로 도입하여 1888년에 3종의 신식화폐(동전)를 주조했다.

 

최초로 발행된 신식화폐는 개국 497의 연호로 발행된 1환 은화와 10, 5문의 적동화였다. 이때 주조된 은화와 동화는 일본 화폐와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화폐의 문양을 앞면의 위쪽에는 태극장을, 좌우에는 오얏나무 가지를 교차시켰으며 뒷면의 중앙에는 쌍룡을 그려 넣은 것이 달랐다. 태극은 국가를, 오얏나무 가지는 이씨 왕실을, 그리고 쌍룡은 왕의 권위를 각각 상징하여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신식화폐의 주조는 이 3종류의 화폐를 약간 주조하는 시험 단계에서 중단되었으며 이때 주조된 신식 화폐는 거의 유통되지 못하였다.

 

그 후 신식화폐 주조는 우리나라에서 화폐권 장악을 꾀하던 일본의 지원으로 1891년에 다시 시도되었다. 일본은 조선정부로부터 전환국의 운영권을 확보하여, 경성전환국을 해체하고 지금의 동인천역 부근의인천전환국 발행동전 중구문화원 자리에 새롭게 전환국을 마련하였다. 인천으로 이전한 전환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유통된 근대식 화폐를 주조하였다. 이때 주조된 화폐는 닷 냥 은화를 비롯해 한 냥 은화, 두 돈 오 푼 백동화, 오 푼 적동화, 한 푼 황동화 등 5종의 동전이었다.

 

 

인천전환국에서 발행한 5냥 은화. '大朝鮮' 자가 보인다.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

 

인천전환국 건축공사는 18925월에 시작되어 같은 해 11월에 준공되었다. 건물은 중앙의 정원을 중심으로 정면과 좌우에 한 채씩 배치하였다. 3동의 건물 외에도 벽돌건물인 숙직실과 철공장이 있었다. 또한 유치장, 관사, 직공관사 등 3개의 목조 건물도 있었고, 부속시설로 굴뚝과 우물이 2개 있었다.

 

1900년 용산전환국이 완공되면서, 인천전환국에 설치되었던 설비와 기계 등이 용산전환국으로 이설되고 인천전환국은 폐쇄되었다. 이 건물에 대한 이후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한동안 비어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철도감부가 사용했으며, 이후 일본인 소학교 분교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9084월 인천여학교가 이곳에서 개교하여 건물을 사용했다. 인천전환국 건물은 1926년에 벽돌조 2층 규모의 인천공립고등여학교 교사를 신축하면서 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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