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양이를 부탁해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5-06 01:22:55
인천, 20대 젊음에 갈림길을 제시하다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5. 고양이를 부탁해
2001년 10월 29일, 가수 조영남씨가 중앙일보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영화담당 기자를 찾았다. 담당 기자가 전화를 받자 조씨는 다짜고짜 “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냐”고 물었다. 기자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내가 본 한국영화 중 최고작이다. 그런데 어떻게 개봉한 지 2주일도 안돼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췄나. 이런 영화는 좀 더 많은 관객들한테 소개되도록 언론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며 기자를 다그쳤다. 이런 내용이 중앙일보 10월 31일 자에 소개되었다.
다음날 같은 신문에 영화평론가 조희문 교수의 ‘관객의 선택 강요 말라’는 제목의 시론이 실렸다. 이에 대해 그 다음날 조영남 씨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만은 달랐다. ‘고양이…’의 눈빛이 너무 맑았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얼떨결에 SOS를 친 거다.”라는 논조의 글을 게재했다.
지면을 통한 두 사람의 논쟁은 결과적으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정말로 ‘부탁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경쟁 부문에 ‘고양이를 부탁해’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조영남씨는 김동호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양이…’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 PD에게 압력(?)을 넣어 주연인 배두나와 정재은 감독과의 인터뷰가 성사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고사모(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고 심야 게릴라 시사회를 열어 동료 연예인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조폭’에 죽었다. 그해 영화계는 ‘친구’를 시작으로 ‘조폭 마누라’ ‘킬러들의 수다’ 등 주먹이 난무하는 영화가 빅히트 행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 틈새에서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들은 관객이 없어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리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10월 13일 개봉했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정재은 감독은 종영 일주일 후 스태프와 쓸쓸한 저녁을 먹고 여행을 떠났다. 그때 조영남 씨가 ‘죽어가던’ 고양이에게 인공호흡기를 댄 것이다. 고양이의 운명은 이렇게 바뀌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인과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그렇다면 당시 인천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인천에서는 ‘조영남 논쟁’ 이후에 이 영화를 살리자는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인천시민모임’이 결성되었다. 2001년 11월 9일 인천시청에서 이 시민모임의 운영위원장 인하대 최원식 교수를 비롯해 제작자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정재은 감독, 주연배우 배두나, 지역 시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활동에 돌입했다.
극장이 재상영을 외면하면 천막극장이라도 지어 장기 상영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11월 20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특별 시사회를 개최했다. 대공연장 1천500석이 모자라 서서 보는 관람객까지 합쳐 2천여명이 몰리는 대성황 속에 상영되었다. 시사회에 그치지 않고 인천 CGV에서 재개봉이 결정되었다. 그 전까지 재개봉은 아카데미 수상작의 ‘앵콜 상영’이 아니면 그 예가 거의 없었던 일이다.
이제 ‘문제’의 그 영화를 되새겨 본다. 이 영화는 인천의 한 여상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갓 시작한 20대 여성 5명의 이야기이다.
하릴없이 집안일 찜질방을 돕는 착하면서 엉뚱한 태희(배두나 분), 서울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성공을 야심차게 꿈꾸는 예쁜 깍쟁이 혜주(이요원 분),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가난 때문에 좌절하고 있는 그림 잘 그리는 아웃사이더 지영(옥지영 분), 액세서리 노점을 하는 명랑한 쌍둥이 비류(이은실 분)와 온조(이은주 분)는 단짝 친구들이다. 늘 함께했던 그들이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가는 길이 달라진다.
어느 날 지영이 길 잃은 새끼 고양이 ‘티티’를 만나면서 스무 살 그녀들의 삶에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들게 된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를 닮은 그녀들.
‘고양이’는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을 담은 하나의 매개체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영은 혜주에게 고양이 ‘티티’를 생일선물로서 넘겨주지만 혜주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면서 그것을 거부한다. 그 이후 지영은 ‘티티’를 애지중지 기르다가, 낡은 천장의 무게 때문에 집이 붕괴하며 조부모가 돌아가신 이후 그것을 태희에게 맡긴다. 그리고 집에서 뛰쳐나와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자유로운 세계로 탈출하고자 하는 태희는 고양이를 비류와 온조에게 맡기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고양이 ‘티티’는 돌고 도는 그들의 마음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갈림길을 제시하지만 결과를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혜주와 태희 그리고 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땅의 20대 젊음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을 안내할 뿐이다. 인천은 ‘갈림길’을 제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다. 하늘길, 바닷길, 땅길…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이다.
남동구 만수동에서 지영이 새끼 고양이를 줍는 장면으로 첫 촬영에 들어간 이 영화는 신포지하상가와 인천항에서의 마지막 씬을 찍으며 6개월간의 인천 로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주인공들의 발걸음이 줄곧 만석동, 신포동, 월미도, 차이나타운 등 우리에게 낯익은 동네들을 넘나든다. ‘십대’의 울타리를 넘어 ‘여자’로 세상의 시선과 마주치는 그 시간에 놓인 인천녀들의 호흡이 필름 곳곳에 짙게 깔려 있다.
특히 일명 ‘똥마당’이라 불린 북성부두와 만석동의 ‘아카사키촌’의 장면은 인천의 주변부, 즉 지역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천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단순한 공간적 차원을 넘어서 필름을 통해 인천의 아픈 지역을 되새기는 시선을 갖게 하였다. 이로 인해 지역의 일각에서는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이 시점에 왜 하필 인천의 후미진 곳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도시이미지에 역효과를 주냐’는 강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영화의 주무대인 동구 만석동은 강화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지방의 세곡을 모아 두는 포구였다. 일만석(一萬石)의 세곡을 야적하였다 하여 만석동(萬石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매립을 통해 부지를 확장한 일제는 이 일대에 군수공장을 세웠다. 만석부두와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숙소촌이 되면서 ‘아카사키촌’이라 불렸다.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이 들어왔고 이어서 도시 빈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쪽방촌이 형성되었다. 인근에 만석비치아파트가 재개발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쪽에 60·70년대 판자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골목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져 있고 아직도 곳곳에 공중화장실이 있는 동네이다. 이곳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최근 ‘고양이를 부탁해’는 ‘한국의 역대 청춘영화 베스트10’ 에 뽑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 2월 7일부터 15일까지 영상자료원 온라인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1984년)이 역대 최고 한국청춘영화 1위에 선정됐다. 2위는 ‘바보들의 행진’(1975년), 3위는 ‘비트’(1997년), 4위는 ‘맨발의 청춘’(1964년), 그리고 5위는 ‘고양이를 부탁해’(2001년)이다. 이어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엽기적인 그녀’(2001년), ‘고교얄개’(197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가 그 뒤를 이었다. 유동현 굿모닝 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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