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5-06 01:13:59
그녀들의 굵은 땀방울 도원동을 적시다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운동경기에 관한 문제 하나!
가로 40미터 세로 20미터의 공간 양쪽에 골대가 있고 골키퍼까지 포함해 총 7명의 선수가 공을 갖고 뛰는 경기는 무엇일까요? 골키퍼가 있다는 것은 축구와 닮았고 공을 갖고 뛴다는 것은 농구와 비슷하다. 그런데 7명의 선수라는 것이 축구도 아니고 농구도 아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핸드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요즘엔 TV 뉴스시간에 꼭 스포츠뉴스가 딸림으로 나와서 굳이 스포츠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각 종 운동경기 소식과 선수들 신상에 관해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많은 스포츠뉴스에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 프로야구시즌이다 K리그다 해서 프로축구나 프로야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요즘엔 국내외 가릴 것 없이 골프소식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이 빅스타 인 경우에 수영과 스케이트도 덩달아 조명을 받게 되지만 한국에서 핸드볼의 경우는 둘 다 아니다. 인기 있는 종목도 아니고 핸드볼 출신 빅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핸드볼을 주인공 삼아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영화 중에 어린이나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감동드라마로 치자면 스포츠만한 소재가 없다. 흔히 말하는 ‘9회말 역전’이란 것도 야구용어를 빗대어 인생의 반전을 말할 때 자주 쓰인다. 스포츠경기가 인생의 굴곡과 닮은 점이 많은 까닭이다. 고된 훈련의 땀방울, 패배의 아픔, 반복되는 지루함과 인내, 마침내 손에 넣는 우승의 순간과 성공.
임순례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8년 새해 벽두부터 흥행몰이에 성공하며 흔히들 ‘우생순’이라고 줄여서 불리워지고 있다. 우생순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스포츠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축구나 야구처럼 잘 알려진 종목이 아니라는 점과 기존의 영화가 대부분 남자선수가 주인공이었던 반면에 여자선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우생순은 할리우드영화 ‘그들만의 리그’와 닮았다.
영화를 보면 왜 감독이 굳이 ‘한국여자 핸드볼팀’을 영화의 소재로 삼았는지 명확하다. 그것은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더욱 확실해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도 나오듯이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경기 결승전에 나선 우리 대표선수들의 실화에서 그 소재를 빌려왔다.
아테네 올림픽 이전에 이미 두 번의 올림픽을 제패한 한국 여자 핸드볼의 주역들은 이제 공을 잡던 손에 ‘현실’이라는 공을 움켜쥐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대비해 핸드볼협회는 긴급히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한다. 김혜정(김정은)은 한국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하다 협회의 부름을 받고 올림픽대표팀 감독대행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어린 선수들로 조직된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부족한 팀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과거의 대표팀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김혜정과 함께 3인방으로 불렸던 함미숙과 송정란이다. 함미숙(문소리)는 올림픽2연패의 주역이었지만 받아주는 팀이 없어 같은 선수출신인 선배와 결혼을 하고 주부로 살고 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빚쟁이의 성화에 시달리며 마트에서 알바를 하며 어린 아들과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송정란(김지영) 역시 남편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불임으로 인해 늘 마음 한구석이 비어서 쓸쓸하다.
혜정의 부탁으로 정란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대표팀으로 들어오지만 미숙은 생계 때문에 망설인다. 혜정은 우승축하금을 미리 당겨준다며 자신의 돈으로 빚을 해결해준다. 미숙은 맡길데 없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대표팀에 합류한다. 옛 멤버를 규합해 이제 진짜 대표팀을 꾸려가는 감독대행 혜정에게 청전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남자대표선수 출신인 안승필(엄태웅)이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협회의 처사에 반발한 혜정은 합숙소를 나온다. 새 감독은 아테네올림픽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고 선수들을 닦달한다. 체계적, 합리적, 과학적을 강조하며 선수 개개인의 자세를 분석하고 개별식단과 훈련방법을 제시하지만 선수들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선수들 하나하나의 사정과 고충은 들은 척 하지 않고 원칙만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선수들의 단합으로 혜정은 다시 선수로 대표팀에 들어오고 올림픽을 향한 훈련에 가속도가 붙는다.
드디어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일궈가며 우승에 한발짝 다가간다. 내일은 결승전이다. 덴마크와 이기면 금메달이 그녀들의 것이다.
그녀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수십, 수백 번의 훈련과 연습이 눈 앞에 스친다. 영화에서 많은 장면을 차지한 핸드볼 연습을 하던 장소는 인천시립도원체육관에서 촬영되었다.
현재 인천엔 문학경기장과 삼산월드체육관이란 큰 경기장이 있지만 도원시립체육관의 역사는 곧 인천체육의 역사나 마찬가지라고 인천광역시 중구史에서는 밝히고 있다. 같은 책에 의하면 원래 인천엔 웃터골운동장이란 천연의 운동장이 있었는데 이것을 1920년에 웃터골 공설운동장(현 제물포고등학교)으로 확장하였다.
이곳에선 육상, 축구, 야구 등을 할 수 있었고 26년 말에는 스케이트장까지 개장하여 명실상부한 인천체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다 1934년 일본인들은 동경올림픽을 겨냥하여 웃터골운동장보다 좀 더 규모가 큰 종합운동장을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도원동에 설립된 인천공설운동장이었다.(현 숭의동공설운동장) 또한 도원동 6번지에는 공설운동장과 함께 확장되어 건립된 야구장이 있었다.
광복 이후 인천체육의 터전이 도원동공설운동장과 야구장이었다면 80년대 이후엔 도원실내체육관과 실내수영장이 그 뒤를 이었다. 도원실내체육관은 1968년 시작되어 1978년 제59회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건립되었다. 당시 실내체육관 공사가 계속 늦어지자 일부 언론에서 체육회 관계자들이 공사비를 착복했다는 기사를 연일 내보냈고 주위에서 비난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원동 12번지에 자리잡은 시립체육관을 세운 배경에는 인천시장을 지낸 유승원이 국회의원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70년도 중반이후에 천정공사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각 종 경기를 열었다는 데서 당시 실내체육관이 인천지역에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알려준다. 실내체육관 근처 도원동 47번지에는 인천실내수영장이 1978년 건립되어 현재까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도원동 언덕을 올라보니 도원실내체육관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리모델링을 하는 중이다. 바로 앞에 자리 잡은 공설운동장 역시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다. 입구에 쓰인 안내판을 읽어보니 축구전용경기장과 아파트4개동을 건립한다고 한다. 웃터골에서 시작된 인천체육의 바람이 도원동에서 꽃을 피울 모양이다.
다시 영화의 마지막 부분으로 돌아가면 올림픽결승전 장면이자 실화 그대로다. 한국과 덴마크, 두 팀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유럽의 텃세 탓에 서너 번의 불공정 심판을 감수하며 25:25, 29:29 동점을 거듭하며 연장전에 들어간 두 팀. 34:34! 이젠 피 말리는 패널티 킥으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다.
2004올림픽 여자핸드볼결승전이 방영될 때 집집마다 함께 탄성을 지른 기억이 새롭다. 평소 무관심한 핸드볼 경기에 국민모두 빠져들었던 것은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경기 때문도 게다가 결승전 때문도 아니었다. 덩치 큰 유럽선수들과 섞이면 초등학생처럼 보이던 한국 아줌마들의 투혼이 국민들을 울렸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그녀들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최고의 대표선수로 금메달을 두 번이나 조국에 바쳤지만 돌아온 것은 올림픽 ‘효자종목’이란 웃기지도 않는 호칭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들은 세 번째 조국의 부름에 달려와 또다시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다. 국민들은 그녀들에게 세 번째 금메달을 주었다.
이 영화 우생순을 보며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같다. 한 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버림받은 존재. 가족에 치이고 돈에 치이고, 남의 이목에 치이고 남은 것이 ‘악’ 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무모한 격려보단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이웃이 낫기 때문이다. 권양녀 前 문화사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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