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대를 사랑합니다'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4-13 12:32:16
노인 주름 같은 전도관 동네 골목길에 인공눈 뿌리고…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1.'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년 04월 07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시사회에 앞서 관객들은 물티슈 하나씩을 받았다. 관객들은 그 물티슈 덕분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은 사람은 철이 들지 않았거나 인생의 슬픔과 기쁨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 정말 오랜만에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울음을 흘렸습니다.’ 영화 관련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영화 평이다. 이 한 줄의 평이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인기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원작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하 그대사)는 인생 끝에 찾아온 아름다운 사랑을 깊은 시선으로 담아 낸 영화이다. 육체는 비록 볼품없이 늙어버렸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며 깊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김만석(이순재)은 아내의 죽음 뒤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속죄하듯 열심히 우유배달을 한다. 칠십 평생 이름도 없이 파지를 모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송씨(윤소정)는 만석에게 ‘송이뿐’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뿐은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과 행복에 벅차하며 그 사랑을 고이 간직하려 한다. 주차관리인 장군봉(송재호)은 유순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김수미)를 돌보며 아내와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 한다.
치매로 사랑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순이는 그림을 그리며 환상과 상상 속에서 사랑을 이어간다. 그들은 꾸미지 않은 표정으로, 손끝의 떨림으로, 따뜻하게 쳐다보는 눈빛 하나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스크린에서 뛰쳐나와 관객에게 진정으로 전달한다. 그 전달의 파급력이 가히 폭발적이다.
개봉 5주차 만에 총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동안 노년의 사랑을 금기시했거나 젊은이의 사랑을 보조하는 소재로만 삼았던 한국영화계에서는 이것을 ‘역주행’이라고 표현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젊고 ‘핫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거나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애틋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눈물샘을 뻥 터트렸고 더불어 흥행도 ‘뻥’ 터졌다.
영화 <그대사>는 인천영상위원회 제작 지원작이다. 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한 끝에 심의를 거쳐 지원을 결정했다. 위원회의 눈썰미가 제대로 된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 로케이션 담당자는 1년 동안 전국을 뒤져 봤지만 허탕치기 일쑤였다. 인천의 구도심 골목을 보는 순간 원작 만화의 배경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영화 <그대사>는 그렇게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영화는 지난해 3월 9일 크랭크인 됐다. 만석과 송씨가 충돌 사고로 처음 만나는 장소이자 이야기 흐름의 중 요한 역할을 하는 언덕길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제작진은 원작과 거의 흡사한 느낌의 숭의동 우각로 언덕배기를 찾아낸 것을 ‘행운’이라고 말한다. ‘만석’이 눈 덮인 골목길을 수레를 끌고 위태롭게 내려가는 ‘이뿐’에게 거친 말투로 ‘비키라’고 말하며 대신 끌고 내려가는 장면은 영화 <그대사> 속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자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상징적인 컷이다. 두 사람의 매개체가 된 눈을 인공으로 한꺼번에 많이 뿌려서 소복이 눈 쌓인 길을 만들어 예쁜 화면을 연출했다.
이곳은 숭의동 ‘109번지’ 일대를 말한다. 사람은 밟고 있는 땅을 닮는다고 했던가. 쇠뿔고개, 황골고개라는 거친 옛 이름을 가진 이 동네는 지형만큼이나 거칠기로 소문났었다. 궁핍했던 시절, 황량한 산에 움집을 짓듯 거주지를 마련한 도시빈민들은 삶이 척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행동도 거칠었다. 한동안 창영동 등 아랫동네 아이들은 그곳에 가기를 꺼렸다.
109번지는 흔히 ‘전도관 동네’라고도 불렀다. 1957년 10월 ‘불의 사자’, ‘동방의 의인’이라 불린 박태선 장로 중심의 종교단체인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산 정상에 전도관을 세우면서 얻게 된 이름이다. 전도관은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였다. 산꼭대기에 성채처럼 우뚝 솟아 있어 인천의 웬만한 곳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도관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골목이 산 아래로 나있다. 그 골목을 따라 오래된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허름한 골목길에는 영화 <그대사>의 주인공들처럼 인간사의 크고 작은 내러티브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노인들의 주름처럼 골목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깊게 패인 도시의 잔주름으로 남아 있다.
영화 <그대사>는 50%가 넘는 장면을 인천에서 촬영했다. 만석의 손녀 연아(송지효)의 직장으로 용현3동 주민센터가 등장하는 등 십정동, 학익동, 을왕리해수욕장, 배다리, 중앙시장, 나은병원, 인천장례식장 등 필름 곳곳에 인천풍경이 가득하다.
영화가 한창 흥행가도를 달리던 지난 3월 30일 오후 1시경 인천 중구 항동3가 하버파크 호텔에 머리카락이 희끗한 어르신이 한껏 멋을 부리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천시가 마련한 어르신 맞선 프로그램에 참가한 60세 이상 독신 남녀 100명이다. 그들은 만석 할아버지의 독백처럼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들이다.
인천시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애민(愛民)편에 있는 ‘목민관은 혼자 사는 노인들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의 ‘합독(合獨)’에 착안해 홀로 된 노인들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한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대화와 게임, 팔미도 선상투어, 스탠딩 파티 등 즐거운 시간을 갖은 후 그들은 ‘짝’을 찾았다. 50쌍 중 총 25쌍이 탄생했다. 그날 그들은 오랫만에 상대편에게 아름다운 고백을 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글·사진= 유동현(굿모닝 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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