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콤한 인생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4-22 22:40:54
함정 빠진 주인공·소래포구 선장 … 달콤한 봄은 어디에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2.달콤한 인생
'움직이는 건 무릇 나뭇가지가 아니고 바람도 아닌 오직 마음뿐이다'. 선문답 같은 독백으로 영화 '달콤한 인생'은 시작한다.'달콤한' 인생이라는 멋진 제목 아래 잘생긴 이병헌의 심상치 않은 눈길이 왠지 불안하기는 하다. 혹 달콤함이 지나쳐 쓰디쓴 인생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인생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시절, 나는 결단코 미래에 달콤한 인생을 단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아마 얼마쯤 '달콤한' 미래를 꿈꿔보기는 했을 것이다. '단'게 몸에 나쁘다고는 하지만 달콤한 인생이 나쁠 이유는 없다.
영화 ‘달콤한 인생’으로 들어가 보자. 사업가로 나오는 김영철은 사실은 폭력조직의 보스다. 그 김영철조직의 2, 3인자 쯤 되는 이병헌은 ‘김실장’이란 명함을 갖고 호텔 클럽의 매니저 업무를 본다. 교향악단에서 첼로를 켜는 신민아는 김영철의 애인이다. 영화의 처음 시작은 이 세 사람의 얽힘이다.
김영철은 이병헌에게 외국출장을 가는 3일 동안 신민아를 감시해달라고 부탁 비슷한 지시를 내린다. 김영철은 몹시 부끄러운 얼굴로 ‘이 나이에 젊은 애인이 있어, 그 앤 우리랑 종(種)이 달라’라며 냉혹한 폭력두목 같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 때 살짝 보스의 인간적인 면을 본 것 같아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병헌은 부끄러워하는 보스에게 축하드린다며 아부성 짙은 멘트를 아버지의 생신상 앞에서 하듯 한다. 보스의 선물을 갖고 온 이병헌을 만난 신민아는 클럽에서 늘 마주치는 여자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생전 들어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했을 첼로라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사실부터 그렇다. 게다가 이병헌이 내민 명함을 보면서 겁도 없이 ‘아저씨, 해결사죠?’ 라고 되묻는다. 보스의 애인이긴 해도 참 순진해 보인다. 처음엔 나름 단순해 보이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후 내내 피냄새를 풍기며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데는 그들만의 반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김영철이 부탁한 젊은 애인의 뒷조사는 사실 구실일 뿐이다. 그는 이병헌의 충성심을 시험하고자 또 다른 부하에게 은밀히 그의 감시를 지시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보스는 이병헌을 이미 제거하고자 미리 함정을 파놓은 것일 수도 있다. 이병헌은 신민아의 외도현장을 잡는다. 지시대로라면 그는 현장에서 보스에게 전화를 걸고 다음 지시를 받아야한다. 그런데 이병헌은 전화기를 들고 망설이고 있다. 왜? 그 때 이병헌을 망설이게 한 이유는 뭘까?
그는 전화를 하는 대신 신민아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는 듯 현업(?)에 복귀한다. 이병헌의 실책(?)을 확인한 보스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제거하려 한다. 정신을 잃고 끌려간 이병헌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곳. 아무 장식이 없는 넓은 시멘트공간, 높은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의 불빛, 피로 젖은 바닥. 소래포구 수협공판장이다.
거꾸로 매달린 이병헌은 자신이 왜 그곳에 끌려왔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필사의 탈출은 영화 주인공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듯 그도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의 연속이다. 소래포구 수협공판장을 찾았다. 옛 수인선의 자취가 사라진 지금의 소래는 대략 난감한 풍경을 자아낸다.
포구에서 올려다보니 어시장 지붕 너머로 초고층 아파트가 무더기로 보인다. 오랜 세월 포구를 삶의 터로 자리 잡고 살아온 이들의 고향 소래가 이젠 자꾸 변해가고 있다. 수협공판장 언저리에서 만난 토박이 선장은 여러 가지가 자신들을 힘들게 한다고 분노보다 포기 쪽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최근엔 바로 옆에 아파트단지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내용인즉 새벽에 출항하는 배들의 소음으로 잠을 설친다는 거다. 그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배에서 내려진 생물들이 경매를 기다리는 공판장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앞의 선장에게 물으니 주꾸미철인데 주꾸미가 안잡힌단다. 그러고보니 배고픈 갈매기들은 죽어라 울어대며 가능한 인간들 가까이로 몰려들고 있었다. 봄은 봄인데 소래는 아직 봄이 아니다. 주꾸미 없는 소래는 소래도 아니다
영화에서 이병헌은 결국 보스와 맞대면을 한다. 그는 끝까지 궁금한 게 있다. ‘왜 그랬어요. 왜 나에게, 7년 동안 개처럼 일했는데, 왜?’ 그 대답은 이병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 너는 왜 그랬니, 왜 신민아의 외도현장에서 전화하지 않았니? 그때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넘실대는 버들의 수많은 가지들이다. 따라 나오는 대사는 맨 앞의 독백이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닌 마음’ 이라는.
그는 그저 보스의 오른팔답게 시키는 일에만 충실했다면 아마 꽤 살맛나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신민아 역시 늙은 애인이 주는 풍요로움에 만족했다면 첼리스트의 고상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움직이는게 사람 마음이라는데 거기엔 장사가 없는 듯하다.
처음 신민아를 보았을 때 그녀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장면에서 그는 마음이 움직였다. 별거 아닌 것에서 그의 마음이 움직였듯이 보스도 그랬을 거다. 영화는 결국 인생은 마음 꼴리는 대로 하는 거고 대충 공평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달콤한 인생을 꿈꿀 때 이미 지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건 포기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냥 달콤한 것보단 달콤쌉싸름한 것이 인생이던 사탕이던 조금은 낫겠다.
자, 생태도시 주민 여러분도 오션뷰에 따르는 프리미엄을 생각한다면 새벽의 뱃고동 소리는 자장가 아니겠습니까.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달콤한 인생을 위한 긍정의 레시피’ 란 책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들춰보지 않았다. 거기에 달콤한 인생은 없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글·사진=권양녀 前문화사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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