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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의영화이야기

14. 애자

by 형과니 2023. 6. 20.

14. 애자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7-14 23:44:03

 

 

 

구월동로데오거리 네온사인 보며 무슨 생각했을까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14. 애자

 

동인천은 오랫동안 인천의 중심이었다. 7,80년대 서울의 젊은이들은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내려와 짧은 하루코스의 여행을 즐겼다. 그들은 동인천역에서 내려 신포동과 자유공원 언덕을 오르내리고 더 나아가 월미도까지 가서 ! 바다다를 외쳤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동인천의 아성은 이후 석바위’ ‘부평역등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주며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주거지역 역시 부평, 연수 쪽으로 시민들은 무슨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집단이주를 했다.

 

중심지역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그래도 현재 인천의 중심지(상권)를 꼽으라면 특히 젊은이들은 구월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동인구 측면에서 보자면 부평역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구월동로데오거리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요즘 대세는 구월동이다.

 

로데오거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서울 문정동이었다. 값비싼 유명 브랜드의 이월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한데 모여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이후 ‘00로데오라는 비슷한 거리들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로데오거리는 미국 헐리우드 스타들이 모여 산다는 비버리힐즈 인근의 거리 이름이다. 명품브랜드가 즐비한 세련된 거리에 대한 선망 때문이었는지 여하튼 로데오거리는 한국에 와서 그야말로 됐다.

 

현재 인천에서 로데오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구월동뿐이니 구월동로데오거리는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패션과 쇼핑의 일번지라는데 토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황하게 구월동을 소개하는 이유는 영화 애자때문이다. 사실 애자에서 구월동 장면은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인천지역에서 촬영했다는 것만으로 인천사람은 기분 좋은 것이다.

 

캐릭터 묘사가 박력있고 필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자신의 시나리오로 데뷔한 정기훈감독은 약속’ ‘와일드 카드의 조연출을 거친 충무로의 숨은 실력자이다. 4년이란 기간 동안 오직 애자의 시나리오에 몰두한 정기훈 감독은 더욱 리얼한 묘사를 위해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 해 400여쌍의 모녀를 만났다고한다. ‘싸울 때는 주로 어떤 주제로 싸우나?’, ‘화해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엄마가 돌아가실 땐 어떻게 이별했나?’ 등 실제 모녀들에게 들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애자는 누구나 공감하며 웃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스물아홉살 애자. 고교 시절엔 공부도 잘하고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도 날렸지만, 그 꼴리는 대로 해대는 성질 또한 못 말리는 드센 성품의 소유자다. 전업작가의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 생활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남자친구는 바람 피우다 걸리고 무엇보다 애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부산 사는 엄마 영희다. 공부 못하는 오빠만 유학 보내줘 어릴 때부터 애자의 심기를 건드리더니, ‘그깟 글 써서 빤스 한 장이라도 샀냐고 비아냥댄다. 게다가 나날이 결혼 독촉까지 하느라 바쁘다. 여느 때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에게 성질대로 퍼붓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그리고 말기 암으로 고통 받는 엄마와 그걸 지켜봐야 하는 딸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만으로도 신파로 흐를 가능성이 90% 이상인데 거기다 암으로 죽어가는 엄마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실제 영화의 모델이 있는데다 400여쌍의 모녀를 면담하고 난 결과를 반영한 작품이라 극의 전개가 작위적이진 않다. 가족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가족이야기의 중심은 늘 어머니 또는 엄마였다. 흔하디 흔한 설정 같지만 그게 어쩌면 우리 삶의 진실일수 있다. 어머니나 아버지 다 같은 부모지만 어머니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존재라는.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이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았다는 것이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영화 애자의 전반부는 모녀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성격과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약간은 코믹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하다. 후반부로 가면서 엄마의 투병과 딸의 간병생활, 그리고 징한 화해의 시간을 보여주며 사정없이 보는 사람의 눈물 콧물을 쥐어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용전개가 뻔한 신파라도 배우가 얼마나 살아있는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신파조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김영애와 최강희는 확실히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본다.

 

모녀간을 연기한 두 배우는 평소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이들답게 애자의 사실성을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정기훈 감독은 최강희는 선수고 김영애는 귀신이다라는 말로 두 배우의 연기력을 높이 샀다. 한편 서울 출신인 최강희가 부산사투리를 하는 것을 보고 실제 부산 출신인 김영애도 인정했다니 영화 애자에서 두 여배우의 연기배틀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겠다.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는데 배우의 연기 말고도 감독의 집념도 한 몫을 했다. 최강희가 촬영한 총 1,725 테이크 중 그녀가 치고 박는 촬영 분량만 306! 선생님한테 대들다 맞고, 동네 양아치에게 겁도 없이 덤비고, 엄마와는 시도 때도 없이 대들다 쥐어터지기 일수. 그 중에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맞은 최강희는 극중 리얼함을 더하기 위해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맞으며 연기를 했다. 가히 배우 최강희의 험난했던 연기열전이라 할만하다. 한편 최강희가 촬영 중 눈물을 쏟은 횟수는 103! 특히 웬수 같던 두 모녀가 하룻밤을 자며 화해를 하는 내소사 장면은 강력 최류탄을 맞는듯하다. 30년간 쌓아온 회한을 쏟아내며 오열해야 하는 이 장면에서 최강희는 격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결국 6시간 동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완벽한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배우를 만난다는 것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영화 애자를 통해 관객들은 최강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애자에서 구월동은 아주 잠깐 나온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 옥상장면이다. 심란한 애자가 새벽에 옥상에 올라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다. 정확히 구월동 한국방송대 건물 옆의 신한데뷔오피스텔옥상이다. 영화에서는 옥상 너머로 구월동로데오거리의 네온사인들이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거리에서 빛나고 있다.

 

구월동은 이제 예전의 구월동이 아니다. 본래 구월동은 소래산의 서쪽 줄기가 뻗어 구릉을 이룬 모습이 마치 거북이와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큰구월, 작은구월, 전재율, 성말 등 자연부락이 있던 곳이 남구 구월동이 되었다가 1988년 남동구 구월동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구월동에는 인천시청과 중앙도서관, 인천교육청, 인천종합문화회관, 중앙길병원 등이 있어 인천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이다. 또 로데오거리에는 신세계와 롯데 두 백화점이 있어 패션과 쇼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다음엔 이 로데오거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인천시민으로서의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정기훈감독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과 부모를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극장문을 나서며 부모에게 한번쯤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개봉한 2009애자는 올해의 힐링 시네마로 선정되었다.

 

영상 및 영화 치유 프로그램 개발사인 한국영상응용연구소(대표 심영섭)영화 애자는 한국의 모녀관계를 진솔하게 드러내면서도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녀 관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보편성이 있다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력으로 생존하면서도 여성성을 잃지 않는 애자의 캐릭터에 위로받고 화해하고 싶은 대중에게 강력한 정서적 환기와 치유력을 줄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징글징글한 모녀간의 애증교향곡은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될 터이지만 무더운 계절, 달고 시원한 수박 한쪽 엄마손에 쥐어드리며 은근슬쩍 불효의 수치를 내려봐야겠다. 권양녀 문화사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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