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이라는 공간, 그 풍속화
인천의문화/김윤식의도시와예술의풍속화 다방
2011-10-24 21:32:24
찻잔에 담긴 젊은 날 너와 나'추억 아지트'
1 프롤로그 - 다방이라는 공간, 그 풍속화
2011년 10월 07일 (금)
▲ 국제다방
"그곳은 거리의 응접실이었다. 만인의 사무실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다. 한편으론 문학과 예술을 불태운 아지트였고 맞선과 데이트의 중심이었다. 나이 든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대학생의 공부방, 직장인의 휴게실이기도 했다. 실업자의 연락처였고 회사 없는 '사장님'의 둥지였다. 의자 깊숙이 들어앉아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담소하는 여유도 있었다."
민병욱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은 다방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니던 다방'에 대해 그 정의랄까, 용도랄까, 혹은 풍속이랄까, 비교적 잘 짚어 썼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우리가 다니던 다방'이라고 말한 것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생긴, 모던(Modern)의 상징이었던 초기 다방들과는 생리가 다르기 때문에 쓴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차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자.
아무튼 민병욱의 이야기에는 더 추가할 다방의 속성이자 풍속화가 남아 있다. 다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초짜 청춘들에게 술집, 당구장과 함께 성인의 증표를 달아주는 일종의 '관례(冠禮)'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 샘터다방
고등학생 시절 우리를 억압하던 이 지상의 모든 '금지'부터 온전히 해방을 얻어 누리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자유를 무한히 만끽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첫째 다방으로부터 승인을 얻어야만 했던 것이다.
#. 성인으로 인정받는 이 의례가 그토록 조급하고 조바심이 났던 모양인가. 그날,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날, 우리는 호기심과 설렘과 동경의 높은 곳에 달린 다방의 문을 열기 위해 계책을 짰다. 아니, 계책이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고3 시절에 '대학 입시를 위해, 그리고 가정에 오래도록 상비하기 위해' 구입한 혼비(Hornby) 영영사전을 돌아가면서 헌 책방에 넘기기로 했던 것이다. 다방의 찻값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창영학교 앞 헌 책방에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사전을 내주고 받은 액수는, 책의 정가에 비해 물론 형편없는 푼돈이었겠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제일 먼저 사전을 처분한 것은 이 모(某)라는 동창생이었다. 책방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쥔 것도 그였던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커피 세 잔과 당시 15원 하던 '스포츠' 담배 한 갑을 살 수는 있는 액수였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지만 영영사전을 돌아가며 처분하기로 한 약속은 그것이 끝이 되고 말았다. 기분이 몹시 거북하고 커피 맛처럼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한낮이고, 추운 날씨인데도 다방 안에는 어른 몇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위아래를 훑어보는 마담의 눈길에 얼마간 주눅이 든 채, 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난로에서는 가장 먼 창문가에 가 어설프게 앉았다. 난로는 연탄난로였고, 그 위에는 커다란 양은주전자가 김을 뿜고 있었다. 하얀 바탕에 위쪽으로 파란 선이 둘러진 사기잔에 레지가 아닌 아까 그 마담이 엽차 석 잔을 딸아 왔다.
마담이 엽차 잔을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웃는 듯이, 깔보는 듯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입을 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우리 중 하나가 "커피요."라고 목구멍에 걸린 소리로 말했을 성싶다. 그러자 이번에도 마담은 말없이, 또 그 표정 그대로 우리 셋을 찬찬히 둘러보았던 것 같다. 이를 테면 너희들 모두 똑같이 커피를 마실 것이냐, 묻는 표정이었다.
처음 들어설 때와 달리 다방 안의 어른들이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식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멋지게, 길게 연기를 내뿜고 싶어도 자꾸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 졸고 <다방, 그 공간의 의미> 중에서
▲ 다방은 예술인들에겐 아지트였고, 맞선과 데이트의 중심이었으며 학생들에겐 성인임을 인정받는 의례가 있던 곳이다.
1960년대 절반을 막 넘어선 시절, 이렇게 해서 우리 셋은 생애 최초로, 보호자 없이 다방에 들어가 주눅이 든 채 어설프게 커피를 마셨다. 아니, 커피가 아니라 참으로 씁쓸하고 허망하게 혼비 영영사전을 마셔 버린 것이다. 당시 우리 같은 이 따위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딱한 청춘들이 분명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다방을 드나들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함께였지요. 아버지는 어린 저를 옆에 딱 붙여 앉히고는 꼭 달걀 반숙을 시켜주었습니다. 다방 출입을 엄금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귀가가 늦어지는 아버지를 재우치려 서너 번, 간 적 있습니다. 다방 안에 들어서는 게 꼭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는 것 같았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로 다음 날, 친구들과 태연히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습니다. 누군가 학생 아닌가요, 라고 물어주기만을 기다리면서요. 졸업했거든요, 이라고 톡 쏘아붙일 연습을 한 채로요.
이 짧은 글은 소설가 하성란이 쓴 것이다. 글을 읽으면 달걀반숙과 함께 왜 그런지 그녀의 흰 이마가 생각난다. 아무려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로 다음 날, 친구들과 태연히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습니다. 누군가 학생 아닌가요, 라고 물어주기만을 기다리면서요. 졸업했거든요, 이라고 톡 쏘아붙일 연습을 한 채로요"라는, 우리처럼 고등학교 졸업 다음날이었지만, 우리와는 전혀 달리 건방지고 당돌한 그녀의 언사 속에도 결국 다방이라는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어 드디어 성인으로 가는 도정(道程)이 드러나 보인다.
또 하나 민병욱이 언급하지 않은 다방 풍속 중에는 연애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무미한 어조로 말하는 그런 데이트가 아니라, 최초의 설레는 연애! 그러나 또 그 연애에는 언제나 끝이 있었고, 손끝에서 속절없이 타 들어가는 푸른 담배 연기, 그 자욱한 절망감……. 누가 뭐래도 다방은 깨어진 사랑의 약속에 애타 하던 서글픈 풍속화, 그 현장이기도 했던 것.
▲ 삼화다방
#.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 내 속을 태우는구려 / 팔 분이 지나고 구 분이 와요 / 일 분만 있으면 나는 가요
<커피 한 잔> 중에서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 꿈결처럼 감미로웠다 / 약속 시간 흘러갔어도 /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 싸늘하게 식은 찻잔에 / 슬픔처럼 어리는 고독
<찻집의 고독> 중에서
펄 시스터즈가 부른 <커피 한 잔>이나 나훈아의 <찻집의 고독>은 두 노래가 다 '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노래이다. 오지 않은 연인을 기다리며 조바심치던 젊은 날의 심사(心思)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1분, 또 1분, 눈길은 연신 문 쪽에 주면서 주체할 수 없어 엽차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초초한 심정. 또는 다방 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내 그곳이 결별의 현장임을 깨닫는 가슴 아픈 경험! 바로 나훈아의 노래처럼 '감미로운 기다림의 순간(시간)과 싸늘하게 식어 버린 찻잔'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 이른 아침의 그 찻집 /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 외로움을 마셔요 /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 홀로 지샌 긴 밤이여 /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 왜 한숨이 나는 걸까
<그 겨울의 찻집> 중에서
너와 내가 만나던 그 곳은 언제나 / 바다가 보이는 찔레꽃 찻집 / 그 곳엔 약속이 그 곳엔 내 얼굴이 / 그 곳엔 너와 나의 내일이 있었지 / 다리를 건너서 숲길을 따라서 / 너와 내가 속삭이던 찔레꽃 찻집
<찔레꽃 찻집> 중에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은 이미 지나간 사랑을 한숨짓고 있다. 다방 '창가에 걸린 '마른 꽃(박제)'이 떠나버린 사랑의 상징이다. 조영남의 <찔레꽃 찻집> 역시 아득한 옛 연애의 비애가 서려 있다. '만나던' '속삭이던' 그리고 '있었지'라는, 모조리 과거형의 술어(述語)들이 이미 사랑이 '지났음(끝났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유난히 많은 다방 배경의 노래만 보아도, 다방이라는 공간이 우리 생활, 우리 젊은 날의 사랑에 직간접으로 얼마나 영향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너와 나, 연애의 환희와 실연의 쓰라림이 겹치는 회억의 무대, 감정의 공유 면적! 실로 다방은 우리 한국인의 사랑의 한 풍속도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민병욱은 그것을 놓치고 있었다.
물론 다방에는 손님과 마담이나 레지와의 사랑도 있었다. 모나리자 그림 때문에 벌어진 오해의 사랑, 주요섭의 소설 <아네모네의 마담>같은 사연도 있었고, 소설가 김용익의 레지를 사랑한 <겨울의 사랑>도 있었다. '푸른 돛' 다방의 레지를 사랑한, 곧 봄이 오면 방한용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언청이 몽치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 비슷한 이야기들은 시대의 풍속화처럼 우리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그려지곤 했었다.
6·25 이후 한 집 걸러 다방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밀어닥친 다방 성업의 물결 속에서 산골 벽지(僻地)나 오지(奧地) 사람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출입이 있었을 다방! 해서, 다방에는 첫사랑에 몸을 떠는 자, 즐거운 자, 피곤한 자, 실연한 자, 아파하는 자, 속이려는 자, 속는 자, 고뇌하는 자, 또 지식이 있거나, 예술을 하거나, 지위가 낮거나, 부자이거나, 노인이거나, 대학생이거나, 어느 누구도 구속 받음이 없이 와 앉을 수 있었고, 마음 조리며 기다릴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고, 속삭일 수 있었고, 쉴 수 있었고, 식은 찻잔을 앞에 놓고 이별할 수 있었다. 해서, 다시 다방은 그 공간에 드나들던 그때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인생의 한 간이역으로, 교차로로 두고두고 살아남아 있지 않을까.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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