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永化) 학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6-12-26 01:57:07
영화(永化) 학교
188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비로소 근대 학교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는 개화운동의 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신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가 원산학교(元山學校)와 동문학(同文學), 육영공원(育英公院) 등이다.
원산학교는 1883년 8월 개항장 원산의 학부모들이 외국의 도전과 새로운 정세변화에 대응키 위해 덕원부 원산사에 설치했으며 같은해 10월 정부의 승인을 받아 국내 최초의 근대학교로 거듭났다.
정부는 같은해 동문학과 육영공원 등 근대적인 관학을 설립, 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개신교가 인천을 통해 유입되면서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이 문을 열게 된다. 아펜젤러에 이어 내리예배당 운영을 맡은 조원시 목사는 1892년 3월 내리교회 구내에 강재형 전도사 부처와 함께 남자 어린이 3명, 여자 어린이 2명을 모아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학생을 맡아 가르친 학급은 후에 영화학교(永化學敎)가 됐고, 여학생을 맡아 지도한 것이 영화여자학교의 시초다. 이후 1895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가 설립됐으며, 1899년에는 부평공립보통학교가 만들어졌다.
같은해 지방유지들에 의해 사립학교인 일신학교가 들어섰으며, 1900년에는 인천시립박문소학교가, 1903년에는 제령학교와 인명학교가 각각 설립됐다. 이후 1907년 인천에 순수 민족 자본으로 공립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가 세워졌다. 현 동구 창영동에 위치한 창영초교는 3·1운동 당시 인천 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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